잉글랜드 왕 리처드 2세의 개인 기도를 위해 만들어진 ‘윌턴 두폭화’(1395~1399년께). 성모 마리아에게는 당시 가장 값비싼 안료였던 울트라마린이, 아기 예수에는 금색이 쓰였다. 아르카디아 제공
80점의 명화로 보는 색의 미술사
클로이 애슈비 지음, 김하니 옮김 l 아르카디아 l 3만3000원 한국의 가정집에 있는 성모마리아 조각상은 대부분 하늘색 또는 파란색 옷감을 늘어뜨린 모습이다. 실제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당시 그런 옷을 입었던 걸까. 그보다는 12세기까지 명화들이 성모마리아를 파란색으로 표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파란색은 당시 가장 값이 비싼 안료, 울트라마린으로 만든 색이었다. 준보석이었던 라피스 라줄리를 갈아만든 울트라마린을 사용하려면 화가에게는 부유한 후원자가 있어야 했다.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 미술까지 각 시대의 특징이 잘 드러난 대표 작품들에 쓰인 색의 의미를 연대기적으로 풀이한다. 안료와 도구, 기법의 발전 과정과 같이 색채의 역사를 이해하며 그림을 읽다보면, 그림에 녹아든 인간의 역사도 더욱 잘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파란색은 근대 화학이 발전하고 화학 합성물감(프러시안 블루)이 등장한 18세기 이후에야 저렴해질 자유를 얻었다. 그런 배경에서 1901년 21살이던 파블로 피카소도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자 자신의 차갑고 우울한 내면을 반영해 푸른 색채가 가득한 작품 ‘인생’을 완성했다. 같은 파란색이라도 채도와 명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외로움과 갈망이라는 주제를 탐닉한 피카소는 파란색만으로도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가디언> 등에서 미술 관련 글을 써 온 저자는 “색이 없는 세상은 없으며 색이 고정된 세상도 없다”고 말했다. 수세기 동안 백인 남성 화가가 지배해 온 기존 서양 미술사만 좇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호숫가에서 쉬고 있는 이들은 백인 가족이 아니고 흑인 가족이다. 자화상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이 아닌 처진 가슴과 늘어진 뱃살을 드러낸 80살 여성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대화를 할 수 있기에 이번 미술사 여행이 더욱 충만해진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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