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모든 것의 유혹
클로드 귀댕 지음. 최연순 옮김. 휘슬러 펴냄. 9800원.
클로드 귀댕 지음. 최연순 옮김. 휘슬러 펴냄. 9800원.
수거미는 암컷에게 파리 선물
남자는 여자에게 악어가방 선물
단세포에서 인간까지
‘유혹’을 통래 본 적자생존사
남자는 여자에게 악어가방 선물
단세포에서 인간까지
‘유혹’을 통래 본 적자생존사
공룡은 단지 운석충돌 탓에 멸망했을까? “아니다, 유혹할 능력을 잃어서다”라고 한다면 생뚱맞게 들릴 테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유에 가만 귀기울여보자. 태양빛이 차단되자 식물들은 붉은빛의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만들지 못했다. 이에 초식공룡이 몸의 빛깔을 잃게 되고, 색깔을 잃는 것은 곧 암컷이 유혹할 능력을 상실함이라. 유혹을 못하면 알을 못낳고 종국엔 멸종의 길을 간다.
‘혹자(惑者)생존. 유혹하지 못하는 것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지금 우리가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당근을 즐겨 먹고 있는 것도 유혹하도록 진화해온 습성 때문은 아닌지? 현재 먹고 있는 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선택을 강요당한 것이며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암컷이었다. 수컷이 하는 일이란 대부분의 시간을 암컷 옆에서 유혹하거나 거드름을 피우는 것. 암컷의 알을 뱃속에 받아 여인들만큼이나 고통스러운 해산을 하는 ‘대리부’ 수컷 해마와 같은 예외를 뺀다면 말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유혹>(휘슬러 펴냄)은 세포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종을 이어주는 끈인 ‘유혹’의 여정을 따라간다. 저자는 식물학자로서의 과학적 지식과 시인으로서의 인문학적 상상력을 접목해 생명붙이들의 구애작전을 충격적이고도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단세포 녹조류인 클라미도모나스, 세포는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다른 세포의 편모를 스친다. 서로 더듬다 애간장 녹일 정도로 애무한다. 한 몸이 된다. 은밀하고도 자연스런 핵융합을 한다.” 생명진화의 출발선에서 이미 ‘유혹’의 유전자는 뿌려졌다는 메타포를 던지며 이 책은 말문을 뗀다.
사랑의 기초는 식물이 쌓았다. 꽃은 유혹의 결정체로 향기롭고 달콤한 분비물로 곤충을 불러 ‘성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난초는 암벌의 색과 모양을 닮은 꽃부리를 만들어 수펄을 유혹한다. 속임수에 넘어간 수펄은 꽃부리를 자신의 짝으로 착각해 열심히 사랑연습을 한다. 그 대가로 벌에게 꽃가루를 받은 꽃은 수태를 하고 난초에게 성교육을 받은 수벌은 갈고 닦은 실력으로 진짜 암벌들과의 환상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난초의 유혹은 목표가 명확하고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이에 반해 머리카락에 스는 ‘이’는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아’라는 식이다. 머리카락에 수직으로 붙어서 배와 배를 밀착시킨 채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다 탈진해 죽는 수컷이 부지기수다. 다리가 많은 다지류는 변태 성욕자처럼 군다. 다리 사이에 열 쌍 정도의 고환이 있고 두 개의 페니스를 지니고 있음에도 암컷과의 ‘사랑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 흙 위에 사정을 한 뒤 정자가 스며든 흙을 동그랗게 말아 애인의 질 속에 무지막지하게 집어넣는다. 대단한 정력으로 진화와 번식을 해온 곤충은 ‘섹스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다른 생명체의 유혹의 기술을 들여다보면 인간성과 동물성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수컷거미가 암컷에게 비단실로 동여맨 파리를 선사하는 것과 남자가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악어가죽 가방을 선물하는 것은 과연 다른 행위인가. 결국 “인간의 유혹행위는 다른 생명체들을 모방하고 종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붉디붉은 열정으로 달아올라 우아한 춤을 추는 수컷 게, 수십㎞ 떨어져 있는 애인을 찾아 몇 시간이고 노래를 부르는 ‘바다의 카루소’ 고래, 이들의 구애는 사람 못지않게 숭고해 보인다. 사랑의 기술로 따져 봐도 곤충이나 물고기가 한수 위다. 초파리가 짝짓기 전 상대방의 몸을 샅샅이 핥는 애무의 일인자라면, 암컷 농어는 알을 입에 넣고 수컷을 기다리는 오럴섹스를 만든 장본인이다.
지구상의 생물 95%는 왜 이토록 피곤하게 유혹을 하도록 설계되었을까? ‘혹자선택론’의 결론은 다윈의 ‘적자생존론’과 일치한다. 진화는 효율성에 집착하지 않기에 그렇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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