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결혼은 미친 짓이다’ 작가도 동시로…‘올해의 좋은 동시 2022’

등록 2022-12-23 05:01수정 2022-12-23 11:13

올해의 좋은 동시 2022
권영상·김제곤·안도현·유강희·이안 외 지음 l 상상 l 1만4000원

올해 동시는 크게 성장한 모양새다. 격월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 편집위원인 이안 시인은 “기성 시인들이 동시 쪽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우리 동시의 체력이 강해지고 다양성도 생겼다”고 말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쓴 소설가 이만교도 ‘까진’ 동시를 보탰다. 하지만 막상 도서관에선 신간 동시집을 보기 쉽지 않다. 그 많은 동시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엄마 아빠도 알 수 없는 ‘나’와 같은 마음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엄마 아빠 다툰 날,/ 두 사람 사이에 낀 나/ 끔찍해// 더 끔찍한 건/ 이종우와 고아라 사이에 내가 끼여 삼각관계가 됐다는 소문이 돈다는 거지// 정말,/ 더욱더 끔찍한 건/ 엄마와 아빠가 다퉈 벌어진 틈/ 어떻게 메워야 하나 생각하느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야// 진짜,/ 말도 안 되게 끔찍한 건/ 이종우와 고아라 사이에 엄청나게 큰 틈이 생기길/ 바라고 있는 거지”(‘틈바구니’, 박소이)

이런 마음은? “서점에 갔다/ 윤지가 읽는다고 했던// 책이 같은 걸로 두 권 나란히/ 꽂혀 있기에// 가만히/ 그 앞에 머물렀다// 그 안에/ 윤지가 습지에 사는/ 곤충처럼// 밤과 낮을/ 지내고 있을 것 같았다// 윤지는 물론/ 지난여름에/ 이사 간 아파트에, 그대로// 그 애가 좋아하는/ 식물들의 산책로 너머// 수많은 윤지들의 창문/ 안쪽에//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윤지가 좋아하는 그 책은 결국 열어 보지 않기로 했다// 왠지 나 모르게,/ 놀고 있을 것 같았다”(‘겨울 채집’, 전율리숲)

그러니 도서관 예산을 축소하겠다는 어른들이 고울 리 없겠다. 곱지 않다. 아이들의 눈을 좇는다면 그리운 건 그립고 고운 건 고울 뿐이라, 사랑해 떠난다느니 부러우면 진다느니 말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아이의 시구이긴 어렵지 싶다.
&lt;결혼은, 미친 짓이다&gt;를 쓴 소설가 이만교의 동시 ‘할머니 문방구1’엔 악동의 마음이 재현된다. 그림 김서빈. 상상 제공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쓴 소설가 이만교의 동시 ‘할머니 문방구1’엔 악동의 마음이 재현된다. 그림 김서빈. 상상 제공

간질간질 이런 마음까지도. “…// 순간 훔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얼마든지 훔쳐도/ 들키지 않을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할머니는 나타난다.// 후문에 있는 할머니 문방구엔 물건이 없을 때가 많다./ 그래도 나는/ 할머니 문방구로 간다.”(‘할머니 문방구1’ 부분, 이만교)

2021년 11월~22년 10월 발표된 신작 동시 가운데 63편을 엄선해 엮은 &lt;올해의 좋은 동시 2022&gt;의 출간 간담회가 21일 서울 서초구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기획총괄을 맡은 안도현 시인이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2021년 11월~22년 10월 발표된 신작 동시 가운데 63편을 엄선해 엮은 <올해의 좋은 동시 2022>의 출간 간담회가 21일 서울 서초구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기획총괄을 맡은 안도현 시인이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그런 시들을 추려 <올해의 좋은 동시 2022>가 나왔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10월까지의 신작들 대상. 여느 때와 달리 만 3년 차 코로나, 전쟁, 재해의 그늘이 깊다. 권영상, 김제곤, 유강희, 이안 시인과 함께 기획총괄을 맡은 안도현 시인은 21일 기자회견에서 “19종의 잡지에 발표된 동시들 중 150여편으로 줄이고 최종 63편을 골랐다”고 말했다. 김제곤 평론가는 “타이틀에서 ‘좋은’이란 수식어는 ‘완전무결함’보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지닌 무엇’으로 이해되었으면 한다”며 “동시는 세대를 넘어서고 성별이나, 인종, 계급을 아우르는 감수성에 그 어떤 장르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장르다”고 말한다.

이 말은 증명 가능하다, 도서관에도 없을지 모를 이 시들을 지쳐 되뇐 한겨울밤에도 말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1.

신라왕실 연못서 나온 백자에 한글 ‘졔쥬’ ‘산디’…무슨 뜻

‘정부 대변인’ 유인촌 “계엄 전부터 탄핵 탓 국정 어려워”…계엄 합리화 2.

‘정부 대변인’ 유인촌 “계엄 전부터 탄핵 탓 국정 어려워”…계엄 합리화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3.

환갑의 데미 무어, 젊음과 아름다움을 폭력적으로 갈망하다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4.

중립 기어 밟는 시대, 가수 이채연의 ‘소신’을 질투하다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5.

“내가 정치인이냐? 내가 왜?”… 임영웅 소속사는 아직 침묵 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