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장르소설 4: 모르페우스의 문
소향 지음 l 고즈넉이엔티(2022)
누군가를 만난 뒤 집에 돌아와 씩씩거릴 때가 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데 그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경우다. 불시에 날아온 말, 조소, 자신감 넘치던 몸짓. 상대에게서 날아온 공격에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면서 억울함이 끓어오른다. 그런 날은 무엇을 해도 생각이 그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밥을 먹을 때도, 책을 볼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마음이 그 순간에 못 박혀 있다. 급기야는 혼자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대면하던 순간에 해주어야 했던 말을 되풀이하며 입술을 깨문다. 지나가 버린 아쉬운 순간은 꿈에까지 따라온다. 한참 꿈을 꾸다 벌떡 일어난다. 낮에 하지 못한 말을 크게 내지르면서.
‘모르페우스의 문’은 그런 순간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한 교사와 아이들이 방과 후에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교사는 학교폭력과 관련된 아이들을 소집했다. 교사 앞에는 사이버 폭력으로 상처를 준 아이와, 상처를 입은 아이가 있다. 가해자는 교사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 상황을 빠져나가고, 피해자는 나중에야 속아 넘어갔음을 알고 몸서리친다. 하지만 피해자는 다음 순간, 자신이 몇 분 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정 순간으로 반복해 되돌아가는 타임 루프에 갇힌 것이다. 반복해 같은 상황을 맞으며, 피해를 입은 아이는 차츰 제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용기를 내어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하고, 자신이 그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가해자가 저지른 다른 일도 폭로한다. 그에 따라 교사의 대응이 바뀐다. 가해자의 태도도 미묘하게 변한다. 그렇게 고조되며 해피엔딩을 향해 가는가 싶었던 상황은, 어느 순간 극적으로 반전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과거의 한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은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사람의 마음이 담긴 곳(=뇌)을 스캔하고, 스캔한 정보를 분석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지나간 순간을 섬세하게 복기한다. 이러한 기술 덕분에, 그 마음을 품은 육신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도 과거에 있었던 일을 추적할 수 있다. 소설은 이를 통해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선과 악, 단죄에 밀접하게 관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심리학과 뇌과학의 접목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이런 일이 가능해지리라 믿는 것도 너무 황당한 바람은 아닐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첨단 기술을 인간세계에 응용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손에 들린 인공지능은 개별자로서의 인간이 자신을 뛰어넘어 타인과 공명하는 데 긴요한 무기로 쓰인다. 이 무기는 가해자를 피해자의 마음 안으로 들여보내, 피해자가 온몸으로 통과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만든다. 예상치 않은 순간에 극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그 전환에 놀라 입을 벌릴 때쯤에는, 익숙한 결론이 모습을 드러낸다. 인류의 스토리텔링 역사 내내 강력하게 생명력을 과시해왔던 결론이. 그것은 ‘권선징악’이라는, 역사가 오랜 전언이다. 그리고 수많은 스토리를 통해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오랜 합의, ‘권선징악’은 참신한 상상력과 맞닿아 강력한 오라를 발산한다.
정아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