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표작가, 8년 만의 신작
반세기 천착 뒤 세기 전 배경
비극-촌극, 절망-해학 뒤섞어
‘절멸 않는 인간’ 유려한 서사시
반세기 천착 뒤 세기 전 배경
비극-촌극, 절망-해학 뒤섞어
‘절멸 않는 인간’ 유려한 서사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l 푸른숲 l 1만8500원 노벨문학상 후보로 때마다 거명되던 중국 작가 위화(62). 1983년 단편 ‘첫번째 기숙사’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장편은 모두 다섯 편뿐이었다. <허삼관 매혈기> <형제> 등. 10년 전 먼저 노벨문학상을 받은 <붉은 수수밭>의 모옌(67)을 두고 “생각이 충분해지면 한숨에 글을 써내려간다”며 자신에겐 “그런 능력은 없는 것 같다”던 2013년의 말을 다시금 지키기라도 하듯 이번 신작을 더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 지난해 중국서 출간되어 150만명이 사보았다는 <원청: 잃어버린 도시>이다. 원청은 양쯔강 건너 남쪽 600리 아래 도시의 이름이다. 당나귀라곤 본 적 없는, 문 앞이 바로 강인 물의 고장. 이 구체성은 원청의 실체성을 증거하나 ‘원청’은 없기에 누구든 원청을 찾다간 길을 잃는다. 그러나 누구는 원청으로 간다, 가야만 한다. 잃어버린 도시는 잃기 전의 도시이자 되찾으려는 도시가 되어, 불멸하는 도시다. 위화가 “모든 사람의 가슴에는 원청이 있다”는 중국 독자의 말을 빌려 한국어판 서문을 쓴 이유일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원청의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 두 남자를 사랑한 원청의 여자가 주인공이 되어 전개하는 이야기에 앞서 두 대목을 기억해둘 법하다. “두 사람은 우물과 강물처럼 처지가 달랐다. 한 사람은 우물에 대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에 대해 생각했다… 한 사람은 우물의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은 강물의 말을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거칠게 이 둘로 나뉜다. 우물은 머무는 자의 운명이고 강물은 떠나는 자의 운명이다. 우물은 보듬어 안는 이, 강물은 풀어헤치는 이의 것이다. 운명은 때로 욕망으로 헐고, 욕망은 운명에 나앉아 소설 속 우물과 강물 사이는 어지간하면 좌절이다. 슬픔엔 자비가 없어 선행한 슬픔 뒤로 연이어 닥치길 주저함이 없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는 청말의 중국 대륙을 배경으로 하기에 재난엔 도대체 단절이 없다. 그런데도 이 ‘인간’들은 절멸하지 않는다. 두 번째 상징으로 꼽아본, 아마 이런 대사에서 감지되는 함의 덕분이리라. “아이한테 이름이 있나요?” 린샹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100여 집의 젖을 먹어서 린바이자(林百家, 임백가)입니다.” 엄동설한 이름 모를 여염집 여인들의 젖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원청에 이른 ‘린바이자적 삶’. 바로 무너질 수 없는 민중들의 공동체적 운명도, 욕망도 아우른달까. 소설은 기실 100년 전의 이 불멸성에 대한 헌사다. 기미로 충분하다면 여기서 책을 직접 펴보는 게 좋겠다. 이제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옮겨본다.
중국 작가 위화. 푸른숲 제공
중국 작가 위화. 푸른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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