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는 연애하고 노비는 시를 짓네
안대회 지음 l 문학동네 l 1만6000원 임진·병자 양대 전란을 겪은 조선은 변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주자학의 교조적인 지위가 강화하고 남존여비, 장자상속 문화가 강해지는 등 역동적이거나 진취적인 쪽과는 반대로 나아갔다. 자신들만의 명분을 중시한 서인-벽파-노론으로 이어지는 소수 파당정치는 세도정치를 거쳐 나라를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조선 후기 한문학과 사회사 연구에서 일가를 이룬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그런 ‘한두줄로 짧게 정리된’ 조선 후기의 이면을 보여준다. 대상은 영·정조 어간인 18세기 한양. 겉으론 근엄하게 도덕을 강조했지만, 경제안정과 인구증가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분위기의 한양에서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울고, 웃고, 떠들고, 즐기고, 고민하고, 마시고, 놀고 있었다. 양반계층에서 사치와 쾌락 등 각종 욕구를 긍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식탐을 자랑하고, 고양이·비둘기·금붕어 같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문화가 퍼졌다. 출세할 수도 직업을 가질 수도 없었던 서족들은 술과 시로 사회불만을 노래한다.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된 각종 용품과 소품들이 상류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경제적 여유를 갖춘 아전과 중인계급이 ‘여항문학’을 꽃피우고, 심지어 노비도 한시를 지어 이름을 전국에 떨친다. 대부업으로 부를 일군 도시 남자가 비구니를 꾀어 연애하는 등 로맨스도 빠지지 않았다. 요컨대 그 시대 버전의 먹방, 반려동물, 룸펜, 명품 열풍, 자유연애 문화가 한양에서도 꽃폈던 셈. 복작대며 살아가는 도회지 한양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사람 사는 게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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