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연
정세랑 등 지음, 홍은주 옮김 l 문학동네 l 1만7000원
느닷없이 생리가 멈춘다. 사람 만날 일도 없던 긴 격리 기간. 의사는 “몸이 긴 겨울 속에 들어가 있”다며 비대면 처방전을 보내온다. 약국에선 맥 짚고 혓바닥을 보더니 “상상임신”이라 말한다. 어떤 성취감, 그 반대의 어떤 상실감도 가짜이니 헷갈리지 말라고, “발을 디뎌본 적 없는 곳을 향해 좌우지간 걸”으라고.
권유대로 그 가을 집 밖으로 나온 ‘나’는 누더기가 된 그러나 “이토록 빛나는 것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다 할 눈빛의 길고양이를 만난다. “(그) 시선의 그물에 잡힌 물고기”가 되어 그와 결국 반려하기 시작한다.
잠식될 듯 눅눅한 문장들로 온기도 활기도 빼앗긴 ‘나’의 도시가 인화된다. 가을 붉은 낙엽조차 사건 현장의 혈흔 같다. 주변 누구부터 하물며 버스기사, 청소원, 레스토랑 종업원, 편의점 점원까지도 ‘비밀경찰’인가 가늠이 어렵다.
“격리 정책이 시작되었을 즈음 ‘바이러스’가 가리킨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적어도 시력을 빼앗는 감기였다. (…) 반년 후 지방 매체 두 곳이 ‘바이러스를 포함한 사상을 퍼뜨리고’ ‘영토를 분열시켰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었다. 과거에 도시의 보호 동물이었던 멧돼지는 ‘위험’ 동물로 분류되어 시가지라면 수렵대가 임의로 사살할 수 있고…. 사람들은 더는 어떤 전문가의 말도 믿지 않는다. …격리하던 사람들은 이제 본인이 바이러스 취급을 받거나 억울한 죄명을 쓰지 않으려고 격리했다. (…) 격리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은거의 수단이 되었다.”
멧돼지를 빼곤 상당의 기시감이 전해질 만하다. 기실 멧돼지조차 도심 주택가 출몰 시 중성화 뒤 방생됐으나 지난해 11월부터 안락사되고 있는 실제 그 도시의 증언자다.
2020년대 홍콩, “떠들썩하고 활기찼”던 도시는 “침묵한 채 서서히” 분열됐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묘사하다가 두려움을 믿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 북쪽에서 온 비밀경찰이 소리도 없이 진주해 도시를 장악했다.”
여성 작가 홍라이추(44)는 단편 ‘비밀경찰’을 통해 숨이 끊긴 도시의 내막과 계절만을 전하지 않는다. 유폐된 그럼에도 서로 연결된 숨줄기를 찾아 나서는 도시인들의 한 가닥 희망을 농밀하게 ‘알레고리’화 한다.
은밀한데 단호한 문장들. 동지로 만난 남편은 일찌감치 아이 이름(홍더우)까지 지어 부르며 출산을 강요한다. ‘나’는 웃었으나 상상 속에서 아이의 목을 조른다. “아이가 커지는 만큼 나는 시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시국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남편을 경찰에 고발하고, 4년 뒤 가석방된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진짜 홍더우를 낳고 살아간다. 나는 절망하고.
상상임신은 명징한 예후이자 전조일 터, 그 지점서 만나 쑥쑥 성장해주는 고양이는 “모조리 열어 내 비밀과 불안을 담고 다시 닫”은 서랍 속 ‘나’를 거듭 열게 하고, 고백하게 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그를 따라 타인에게 노출된 창문 앞에 서게 하고, 종국엔 타인과―비밀로도―유대하도록 하는 “하나의 문”이 된다.
잃어버린 도시에서의 잃어버린 자아, 그리고 비밀까지 통제해 안전해지라는 국가와 비밀도 나눠 자유로워지리란 개인의 신호가 지금의 홍콩에서 교차하거나 증폭하는 풍경은 실로 핍진하다. 결연한 함축과 비유로 더는 ‘홍콩’을 화제 삼지 않는 2022년의 무딘 감각을 틀어쥐기에, 찬사일지언정 이 작품을 1940년대 <페스트>의 홍콩적 현현이라고만 빗대는 건 게으르고 부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당시 알제리 오랑에선 꿈도 꾸지 못했을 현재 중국의 ‘지위’ 때문인데, 단편 ‘비밀경찰’과 함께 이른바 ‘아시안 앤솔러지’를 표방한 소설집 <절연> 전반에 틈입한 중국의 새삼 짙은 그림자는 간과되기 어렵다.
개인의 감정 상태에 따라 주변 구조물의 색이 변하고, 낙담, 우울, 분노 등 부정적 감정으로 주변을 어둡게 물들이는 이는 ‘정서 구치소’에 격리 수감되고 노역을 치르는 가상 도시가 배경인 ‘긍정 벽돌’(하오징팡, 중국 작가)은 두말할 나위 없다.
2020년 전후 민주화 운동(붉은 옷 시위)에 관여한 태국의 젊은이들과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실패를 기억하는 청년이 축인 ‘불사르다’(위왓 럿위왓웡사, 태국), 대만과 드물게 국교 맺고 원조도 받는 카리브해의 세인트루시아에서 막상 이방인으로 학교 폭력과 “중국으로 가버리라” 차별 받는 대만 소년의 성장기(‘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 롄밍웨이·대만) 등이 또한 그러하다.
왼쪽부터 정세랑, 일본의 무라타 사야카, 홍콩의 홍라이추, 중국의 하오징팡, 대만의 롄밍웨이, 티베트의 라샴자 작가. 문학동네 제공
<절연>은 다른 문자를 사용하는 9명의 아시아권 작가들이 ‘절연’이란 공통어로 각기 쓴 작품을 모은, 흔치 않은 기획 단편집이다. 한국과 일본 외 싱가포르, 베트남, 티베트까지 아울러 3040대 작가로 구성했다. 당초 일본 출판사의 한·일 집필 제안을 받은 정세랑 작가가 ‘절연’ 열쇳말과 함께 아시아 작가들로 역제안하면서 갖춘 꼴이다. 일본 출판사가 작가들을 섭외하고 펴낸 일본어본(출간은 12월중)을 한국서 번역했다. 중국, 베트남 등의 원작이 이중번역된 단점이 있으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이 착안점(‘타오르다’)이 되고, 대만 소년이 “김치만 먹지?” 놀림받는 풍경(‘셰리스 아주머니의…’)처럼 한국과의 접점도 자연히 배어 보완되는 측면이 있겠다.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무라타 사야카의 ‘無’(없을 무)는 무소유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며 지난 기억은 물론 가족과도 단절해가는 신세대만의 풍조와 이러한 세대 전유를 파괴하는 사건을 극적으로 대비시켰고,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 정세랑은 ‘절연’을 통해 성추문 남성의 부활(일선 복귀)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으로 결국 단단했던 관계마저 절단 나는, 동세대·소수그룹 간 신뢰나 기억의 허약성을 그렸다.
절연은, 그 반대말인 ‘인연’을 문화적 토대로 삼아온 아시아라 더더욱 올돌할 수밖에 없다. 무라타 사야카도 “‘연’이라는 보이지 않은 연결을 모두 끊는다는 인상과 임팩트가 있는 말”이라며 “연이 끊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에 ‘절망’이 있다”(정세랑 작가와 대담)고 말한다. 꼬박 3년의 전염병과 주변국 간 요동치는 정세로 벌어지는 ‘너’와 ‘나’ 사이 틈들을 소설가들의 현미한 촉으로 한데 인화해보니 이 책인 셈이다. 그리고 너와 나의 거리는 정 작가의 말마따나 너무 가까워 어떤 위기는 나의 위기, 나의 위로는 너의 위로가 될 것이다. “(싱가포르 여행 때 영화 배경음악) ‘첨밀밀’이 스피커에서 울리니 아시아 사람들만 표정이 촉촉해지고 감상에 젖기 시작하는 거예요. 저를 포함해 울컥하고 울먹이는 사람들도…. 서구나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저 사람들 왜 저러지?’ 하는 표정으로…. 아시아인들이 스스로 가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