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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구 어딘가의 ‘가난한 밥상’…멀지만, 또 가까운 이야기 [책&생각]

등록 2022-11-25 05:00수정 2022-11-25 15:33

부모도, 돈도, 먹을 것도 없던 기나긴 밤
기지 발휘해 배고픈 동생들 재웠던 기억

우리 가족 최고의 식사!
신디웨 마고나 글, 패디 바우마 그림, 이해인 옮김 l 샘터 l 1만4000원

저녁이 됐는데 먹을 것이 없다. 아빠는 일하러 바다에 나가셨고, 엄마는 편찮으신 할아버지가 계신 마을에 갔다. 남은 건 배가 고픈 동생 네 명.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15㎞ 떨어진 구굴레루 마을의 한 가정집. 첫째인 시지웨는 집안을 다시 샅샅이 뒤졌다. 역시 빵가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돈도 한푼 없었다. 동생들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 밥 먹는 거야!” 아침에 먹다 남긴 음식으로 허기를 조금 달랜 것도 한참 전이니 배가 고플 수밖에 없었다.

시지웨가 부엌으로 들어가 버너에 불을 켰다. 커다란 냄비를 꺼내 물을 부은 뒤 버너에 올려놨다. 그러자 동생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샘터 제공
샘터 제공

시지웨는 동생들에게 ‘밥을 먹기 전에 옷을 갈아입어라’, ‘씻고 와라’라며 계속 시간을 끌었다. 물밖에 없는 솥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계속 냄비를 저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졸기 시작했다. 잠꾸러기 시사가 먼저 잠에 빠졌다. 다음은 노시사, 다음은 룬투, 마지막으로 린다.

동생들을 모두 재운 시지웨는 버너를 끄고 신에게 기도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희망의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은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하지만 내일은 다른 걸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 마날라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먹을 것으로 가득한 바구니와 돈을 내밀었다.

음식 냄새에 잠이 깬 아이들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외쳤다. “이건 정말 최고의 식사야!”

세월이 흘러 동생들이 어른이 되어 결혼해 아이를 키우게 됐을 때, 시지웨는 동생들에게 오랫동안 밝히지 않았던 그날 밤의 ‘희망의 식사’에 대해 말해줬다. 동생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 식사야말로 가장 아름다웠던 최고의 식사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미 굶주림에서 벗어난 2022년의 대한민국에 사는 아이들에게 극도의 빈곤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지금 같은 풍족한 환경은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피운 자신의 능력과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자신만을 위해서 쓰겠다는 사고방식은 협소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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