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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짚요 옆의 여자들은 잊지 않는다

등록 2022-11-18 05:00수정 2022-11-18 09:56

햄닛
매기 오패럴 지음, 홍한별 옮김 l 문학동네(2022)

짚요(짚으로 된 요) 위에 누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사람은 열한 살 주디스다. 그 옆 바닥에 수건을 들고 밤새 앉아 있는 사람은 주디스의 엄마 애그니스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애그니스와 ‘영원히 같은 심정’인 메리는 처음부터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애그니스의 시어머니다. 메리도 ‘저 짚요 옆의 엄마’였고 아이 셋을 잃고 나서는 “아이의 심장이 뛰고 우유를 마시고 숨을 들이쉬고 걷고 말하고 웃고 다투고 노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제 아이가 얼마든지 떠날 수 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엉겅퀴 홀씨처럼 흩어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소설은 주디스의 증상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하러 뛰어다니는 햄닛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주디스의 쌍둥이 햄닛은 평생 주디스가 자기의 다른 한쪽이며 둘이 호두의 반쪽처럼 서로 딱 들어맞는다는 느낌으로 살았다. 만약 역병으로 주디스를 잃는다면 햄닛은 불완전하고 가망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햄닛은 주디스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죽음을 감쪽같이 속여 주디스 대신 죽음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결혼 전 마녀, 숲의 정령,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으로 불렸던 애그니스는 약초 전문가에 치유자지만 햄닛을 잃은 후 약초밭도 환자들도 외면한다. 햄닛의 아버지이자 애그니스의 남편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내의 비탄이 치명적인 힘으로 자신을 끌어당겨서 그 안에 휩쓸려 들어갈까 두렵다. 그는 극장 운영과 희곡 집필을 이유로 런던에 가 일 년이 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햄닛이 죽은 지 4년이 되는 해 애그니스는 런던의 남편이 평소 무대에 올리던 희극 대신 비극을 상연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놀랍게도 연극의 제목은 <햄릿>이다(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스트랫퍼드의 기록 문서에서는 햄닛과 햄릿이 보통 혼용되었고 사실상 같은 이름이었다). 놀라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밤을 꼬박 새운 애그니스는 무슨 내용의 연극이기에 죽은 아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는지 런던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기로 한다. 그렇게 찾아간 야단법석 극장에서 우리는 애그니스의 눈을 통해 셰익스피어가 창조해 낸 <햄릿>의 첫 장면을 목도한다. “누구요?” 곧 무대에 유령이 등장하고 애그니스는 그 유령이 남편임을 알아본다. 유령의 이름은 햄릿 왕, 잠시 후 등장하는 젊은 남자의 이름도 햄릿이다. 젊은이는 햄닛이 죽지 않았다면 저렇게 되었겠다 싶을 정도로 햄닛을 닮았다. 애그니스는 자꾸만 무대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유령 역의 남편과 눈을 마주친다. 남편은 애그니스를 똑바로 보고 <햄릿>의 마지막 대사를 한다. “나를 잊지 마.”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틀렸다. 잊지 말라는 전언은 거울을 보고 했어야 마땅하다. 짚요 옆에서 아이의 마지막을 지켰던 여자들은, 끝내 까무러치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의 눈을 감겨주고 직접 수의를 바느질해야 했던 여자들은 잊지 않는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이주혜/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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