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이 불러온 존재론적 혁명
장회익 지음 l 한울아카데미 l 4만2000원 물리학자 장회익(84) 서울대 명예교수는 ‘온생명’이라는 독자적인 생명사상을 세운 학자이며 <공부 이야기>와 같은 저작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저술가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는 물리학자로 돌아와 자신의 전공 영역을 파고든 저작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양자역학’이라는 20세기 물리학의 혁명적 성과를 둘러싼 여러 오해를 씻어내고 양자역학을 새로운 존재론을 통해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철학과 과학이 중첩되는 사유의 극한 지대를 탐사하는 작업이다. 지은이의 근본 관점은 이것이다. ‘양자역학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어지럽게 퍼져 나간 것은 양자역학 세계에 적합한 존재론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턴이 세운 고전역학의 존재론을 양자 세계에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엉뚱한 이해와 해석이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오해가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은이는 빛의 ‘입자’ 성격과 ‘파동’ 성격을 보여주는 관측 실험을 제시한다. 이 실험은 왜 빛이 어떤 경우에는 입자로, 다른 경우에는 파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물음을 불러내는데, 여기서 나오는 해석 가운데 하나가 ‘인간이 관측이라는 방식으로 개입함으로써 물리적 현상이 달라진다’는 해석이다. 쉽게 말해 인간이 물리적 대상에 관여함으로써 그 대상이 존재하기도 하고 그러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이런 해석이 양자역학에 대한 전형적인 오해에 해당하며 고전역학의 존재론으로 양자역학을 해석한 데 따라 빚어진 잘못이라고 말한다. 고전역학의 존재론으로 양자역학을 보게 되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과 맞부딪치게 돼 오해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전역학은 인간 신체 규모의 사물이나 그보다 훨씬 큰 천문학적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양자역학은 원자 단위의 사물을 대상으로 한다. 그 원자 단위를 해석하는 데는 다른 존재론이 필요하다. 지은이는 ‘푸리에 상반관계’와 같은 전문 용어와 고등 수학을 사용해 ‘사물의 위치와 운동량을 통합해서 보는’ 새로운 존재론의 바탕을 제시한다. 또 이 새 존재론으로 원자보다 더 작은 기본 입자의 세계를 해석하는 ‘양자마당이론’도 설명해 들어간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답하려는 것 가운데 하나는 양자역학이 ‘반실재론 아니냐’는 물음이다. 앞에서 본 대로 ‘인간이 관측을 통해 대상에 개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대상이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가정이 타당하다면, ‘인간이 없을 때는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은이는 이런 생각 곧 반실재론을 단호히 부정한다. 양자역학은 실재하는 대상에 대한 학문이고 그러므로 고전역학과 마찬가지로 실재론일 수밖에 없다. 다만 고전역학의 존재론으로 양자세계를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존재론이 필요한 것이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반실재론자’가 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자역학의 존재론 안에서 진정한 실재의 모습을 찾으러 나서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양자역학의 존재론에 대한 물리학자의 간결하고도 정밀한 탐사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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