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핑, 스쿼팅…‘돈’ 아닌 ‘도움’으로 산다
“지갑을 닫았더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지갑을 닫았더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저자 유튜브 채널 ‘Blanket wearer’ 영상 캡처, 일러스트 저자 박정미,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박정미 지음 l 들녘 l 1만9500원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인간의 ‘목줄’이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갈 수 있는 곳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도전이 달라진다. 돈은 인간 행동반경을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 돈을 쓰지 않았더니 오히려 세상이 넓어졌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0원으로 사는 삶>의 지은이 박정미(37)씨다. ‘0원살이’, 말 그대로 돈을 쓰지 않고는 옴짝달싹 못 하게 될 것만 같은데 그는 다른 말을 한다. ‘0원’에 가까워질수록 ‘영원’ 같은,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를 마주했다고.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해서’라거나, ‘기후 변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같은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사용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 스물아홉,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영국에서 해고를 당했다. 통장 잔고는 300만원. 딱 두 달치 월세였다. 2평 남짓한 방에 누워 연거푸 한숨을 쉬는데 불현듯 오싹했다. ‘뭐야, 숨이 돈이야?’ 한숨을 토해내는 찰나의 순간에도 월세는 나갔다. ‘인생이, 시간이, 나의 존재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쓰이는 것이 당연한 거야?’ 소비하느라 노동하고, 노동하느라 소모되는 삶 외에 정녕 선택지는 없는 걸까. 작가는 ‘0원살이’를 결심했다. 소비를 멈추고, 노동을 멈춰 확보한 시간으로 현재의 ‘노동-소비’ 시스템 밖을 엿보기로 했다. ‘우핑’은 그 시작이었다. 우프(WWOOF·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자원봉사자와 유기농 농장을 연결하는 상호 교환 네트워크로, 봉사자는 무료 숙식을, 호스트는 일손을 제공받는다. 농장에서 키운 농작물로만 먹고, 오직 ‘손노동’만으로 농사를 짓는다. ‘오프 그리드’(off grid·중앙 정부의 에너지 공급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태양광 등으로 자체 생산)를 요구하고 일체의 석탄·석유 사용을 금지하는 더 엄격한 공동체 ‘팅커스 버블’에서도 머무른다. 일하면 먹여주고 재워주는 시스템 속에서 ‘0원살이’는 어렵지 않았지만 슬그머니 회의가 고개를 들었다. ‘평생 시골 농장에서 산다면 삶이 시시해지지는 않을까?’ ‘도망치듯 도시를 피해 사는 게 해답일까?’ 제한된 전력량 탓에 온수 샤워조차 어려운데 ‘이렇게 고된 환경에서 기꺼이 살아갈 수 있을까?’


영국에는 살인적인 월세 부담 탓에 ‘보트’에서 살기로 한 청년들이 1만5000명에 이른다. ‘집’이 된 보트의 외부·내부. 저자 제공

저자가 ‘스킵 다이빙’으로 확보한 먹거리. 도시의 음식 쓰레기 배출 현황을 파악하면 돈 없이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다. 몇몇 대형마트는 대형 쓰레기통을 지키는 가드를 고용해 이를 저지한다. 저자는 “낭비로 쓰레기를 만들고, 그 쓰레기를 지키느라 돈, 장비, 인력,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라고 꼬집는다. 저자 제공

저자가 영국 웨일스 ‘라마스 생태마을’을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이곳에서는 오직 두 손으로, 흙집을 짓는다. 저자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