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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섹스토이숍은 쾌락산업을 어떻게 바꿨는가
린 코멜라 지음, 조은혜 옮김 l 오월의봄 l 2만4000원 1970년대 미국. 페미니스트들이 ‘섹스토이’를 팔겠다고 나섰다. 섹스토이숍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남성 중심적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표는 여성이 섹스를 자유롭게 말하고 섹스토이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 1960년대의 성혁명이 이들의 든든한 사상적 배경이었다. 대안적 섹스토이숍은 규모를 키워갔다. 여성이 성적 주체인 동시에 소비의 주체로도 떠오르던 시절이었다. 기존 숍들과의 차이점을 강조하며 페미니스트들은 ‘블루오션’ 공략에 성공했다. 이 책의 제목이 삽입을 위한 ‘딜도’가 아니라 ‘바이브레이터’의 나라인 이유도 이러한 ‘구분 짓기’에 있다. 페미니스트 섹스토이숍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난감한 질문을 만난다. 여성만이 바이브레이터의 나라에 입장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여성은 대체 어떤 여성일까? 흑인 여성, 가난한 여성, 트랜스젠더 여성도 바이브레이터의 나라에 속할 수 있나. 대개 백인 여성의 주도로 설립된 ‘1세대’ 페미니스트 섹스토이숍은 이 질문에 답해야 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두 개의 가치관이 대립했다. 초창기 주도권은 ‘사명감’에 있었다. “하루 종일 단 한 개도 못 팔아도 신경 안 써요. 교육하는 일, 그리고 여성이 자신의 성적 이익을 탐구할 수 있는 대안 공간을 제공하는 게 중요해요.” 대안적 섹스토이숍을 열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영업 기밀을 거리낌 없이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돈과 수익의 문제를 신경 쓰면 안 된다는 믿음”은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시장 논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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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섹스토이숍 ‘굿바이브레이션스’ 매장의 모습. 굿바이브레이션스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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