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르지 루카치가 ‘사회주의 비평의 선구자’라고 불렀던 토머스 칼라일은 <영웅숭배론>에서 책을 두고 ‘인간이 고안해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기적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 속에는 과거 전체의 ‘영혼’이 담겨 있다. 책은 과거의 형체가 꿈처럼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또렷하게 들려오는 과거의 소리다.” 칼라일은 글을 쓰고 책을 쓰는 ‘문인 영웅’을 이야기하는 중에 그런 말을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인물들은 사라졌고 건축물들은 폐허가 됐지만 책은 어떤가? 칼라일은 이렇게 묻고 답합니다. “모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는 책 속에서 문자 그대로 아직도 살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 불러일으켜 살려낼 수 있다. 인류가 행하고 생각하고 얻은 것 모두가 책의 페이지 속에 마술처럼 보존돼 있다.”
칼라일의 책은 책과 책을 쓰는 사람들과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찬양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는 배움을 구하려면 선생을 직접 찾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서양 중세 대학의 기원이 됐습니다. 인쇄술 혁명으로 책이 널리 보급된 뒤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리가 지식을 얻는 곳은 책이다. 오늘날 우리의 진정한 대학은 장서다.” 책은 인간의 생각을 담는 그릇인데 그 책에 담긴 생각이 문명과 도시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만들었습니다. 독서는 책을 쓴 이의 눈과 책을 읽는 이의 눈이 마주치는 일입니다. 독자가 책을 펼침으로써 책 속 글자들이 일어나 말을 합니다. 책은 우리를 무지에서 구해내고 무딘 감수성을 깨워 우리를 다른 우리와 연결합니다. 그러기에 나라를 슬픔과 분노에 잠기게 한 이태원의 참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지와 무책임이 부른 어처구니없는 비극 앞에 할 말을 잊습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