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 최초의 정복자들
포르투갈 제국의 해외 원정기
로저 크롤리 지음, 이종인 옮김 l 책과함께 l 3만원
16세기 유럽은 모순의 시대였다.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 종교 갈등이 극에 달해 서로를 죽여댔고, 신성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은 동유럽과 지중해 패권을 놓고 격돌하며 많은 피를 흘렸다. 하지만 그런 전쟁과 갈등 이면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르네상스로 문예를 부흥시키고 지중해를 통한 해상무역으로 보기 드문 번영의 시대를 일궈냈다.
그런 문명개화와 무역에서 소외돼 있던 유럽의 서쪽 끝 소국 포르투갈은 ‘죽음의 바다’였던 광대무변한 대서양 너머 보이지 않는 세상과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비슷한 처지였던 스페인이 대서양 건너 서쪽 아메리카 대륙 탐사와 정복에 주력했다면, 포르투갈은 과감하게 남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동진하는 길을 택했다.
<대항해 시대 최초의 정복자들>은 당시 인구가 중국 난징보다도 적었던 작은 왕국 포르투갈이 어떻게 아메리카(브라질)에서 아시아 곳곳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해양제국을 건설했는지 촘촘히 재현해낸다. 금보다도 귀한 향신료가 있는 인도까지 해로를 뚫기 위해 시작한 여정은 교역과 약탈, 전파(포교)와 침략이 뒤섞인 과정이었다. 그 동진 속도는 매우 빨라 16세기 말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이 조선을 침략(임진왜란)했을 때 포르투갈인 신부가 종군했을 정도였다.
결국 서양문명의 세계 제패 과정에서 길라잡이 구실을 한 포르투갈인 연대기인 셈. 건조하지만 세밀한 묘사로 당시 인물들과 상황을 재구성한 저자는, 그 배경엔 무모함에 가까운 용기와 과도한 자부심, 호전성, 명예욕으로 무장한 포르투갈인 특유의 기질이 있었다고 짚는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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