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정신분석의 새로운 길

카렌 호나이 지음, 서상복 옮김 l 연암서가 l 1만8000원

카렌 호나이(1885~1952)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의 새 장을 연 여성 정신분석가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베를린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베를린정신분석연구소에서 가르쳤다. 1932년 미국으로 이주해 정신분석진보협회와 미국정신분석연구소를 창립했고, 대중강연을 통해 정신분석학을 널리 알렸다. 1939년 펴낸 <정신분석의 새로운 길>은 프로이트 정신분석 이론의 기본 구도에 대한 호나이의 혁신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호나이가 프로이트를 비판하는 계기가 된 것은 ‘여성 심리학’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을 일종의 자연과학자라고 생각했고, 인간이 겪는 신경증의 기원을 성욕이라는 본능에서 비롯한 것으로 인식했다. 프로이트 이론의 바탕은 생물학주의다. 이런 기본 관점에 따라 프로이트는 여성이 겪는 신경증도 문화 환경이나 인간관계보다는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에서 빚어진 문제라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그런 생각이 잘 드러난 것이 “해부학은 운명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다. 여성과 남성의 해부학적 차이가 여성 신경증의 근본 원인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호나이는 여성으로서 프로이트의 이런 관점에 의심을 품었고 미국으로 이주한 뒤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비판 작업을 본격화해 독자적인 정신분석 이론을 세웠다. 이 책에는 그런 경로를 거쳐 형성된 호나이의 생각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를테면 ‘여성 심리학’을 다루는 장이 그런 곳이다. 프로이트는 여성의 ‘남성 음경 선망’이 여성 열등감의 원인이라고 지목했지만, 호나이는 프로이트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음경 선망으로 여성 심리를 해석하는 것은 전체 인격 구조에 대한 이해를 방해한다.” 핵심은 프로이트가 문화적 요인을 외면했다는 데 있다. “여자는 수세기 동안 경제적·정치적 책임과 동떨어져 정서 중심의 사생활 영역에 갇혀 있었다.” 여성이 여성으로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피학증에 시달리는 것은 여성을 가정에 묶어놓고 억압해온 가부장제라는 문화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 신경증의 근본 원인은 음경 선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불리한 문화적 환경에 있다는 지적이다.

호나이는 프로이트의 문화 경시를 단호하게 비판한다. “프로이트는 기본적으로 생물학에 치우친 방향 감각을 지녀서 이런 문화 요인의 온전한 의의를 알아보지 못하며, 프로이트의 전제에 근거할 때 이것을 알아볼 수도 없다. 프로이트는 문화 요인이 어느 정도나 소망과 태도를 형성하는지 알아보지 못하고, 문화 조건과 여성 심리의 상호관계에 얽힌 복잡성도 평가하지 못한다.” 여성의 심리적 문제를 문화적 환경을 통해 설명하는 호나이의 이런 새로운 정신분석 이론이 현대 페미니즘 이론의 발전에 자극을 주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