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숲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자연 순간들
피터 에스(S). 알레고나 지음, 김지원 옮김 l 이케이북 l 1만9800원
“당신이 도시를 집어 들고서 거꾸로 뒤집은 다음 흔들면, 거기서 떨어지는 동물들에 경탄할 것이다. 고양이와 개만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얀 마텔, <파이 이야기>)
지난 2020년 전세계로 번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도시를 거꾸로 뒤집어 흔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봉쇄령(‘락 다운’)으로 인간이 집에 꼼짝없이 갇힌 사이, 멧돼지, 퓨마, 코요테, 사슴 등 각종 야생동물이 유유히 도시를 활보한 것이다. 각 나라 언론은 “야생동물이 도시를 ‘재점유’했다”고 보도했고, 소셜미디어에는 ‘야생동물 인증샷’이 줄지어 올라왔다.
야생동물은 정말 우리 곁에, 도시에서 살고 있을까? 이들은 언제부터, 어쩌다 도시로 오게 된 것일까? 멧돼지, 퓨마, 흑곰처럼, 위협적으로 보이는 야생동물과 인간이 좁아터진 도시에서 공생하는 것이 가능할까? 미국 환경사학자이자 보존과학자, 자연문화 지리학자인 저자 피터 에스(S). 알레고나는 새 책 <어쩌다 숲>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답한다.
도시의 주인은 원래 야생동물이었다. 세계적인 도시 맨해튼을 보자. 생태학자 에릭 샌더슨에 따르면,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60㎢ 넓이의 섬에는 약 55개의 각기 다른 생물 군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크기 웬만한 우림보다도 많은 숫자다. 9000㎢에 달하는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사는 생물종과 거의 같은 규모의 동물들이 150분의1 밖에 되지 않은 좁은 맨해튼섬에 모여 살았던 셈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힐스에 출몰한 퓨마 ‘P-22’. 이케이북 제공
뉴저지주 주택단지에 자주 출몰하는 흑곰. 이케이북 제공
이처럼 생태학적으로 풍요로운 지역에서 도시가 성장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천연자원, 식량, 물이 풍부한 곳이 동물은 물론 인간에게도 살기 좋은 환경이다. 미국 대도시 50개 중 14개가 “아주 높은 수준의” 생물 다양성을 가진 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배경이다.
도시에서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은 미국 식민지 시대 이후 17∼18세기, 초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도시로 사람이 이동하면서, 말·돼지·소·개 등 가축이 딸려왔다. 1820년경 뉴욕시에만 최소 2만 마리 돼지, 13만 마리의 말이 살았다고 한다. 도시 가축이 먹는 식량, 쏟아내는 배설물, 사체는 도시를 끔찍한 악취, 질병, 빈곤으로 몰아갔다. 결국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선도적인 도시학자·설계사·계획가들은 “인간을 위해 도시를 깨끗하고, 통제되고, 질서정연한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도시 현대화’를 주창한다. 그중 대표적 인물이 뉴욕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다. 그는 도시공원이 시민들에게 깨끗한 공기, 운동 공간,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봤고 이 아이디어는 다른 도시들에도 ‘뉴 노멀’이 됐다.
도시 현대화 과정에 고려 대상이 된 건 오직 ‘인간의 쾌적함’이었지만, 이러한 흐름은 뜻하지 않게 ‘옛 주민’을 도시로 소환했다. 바로 야생동물이다. 예컨대 동부회색다람쥐는 “한 세기나 그 이상 전에 도시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다시 그 자리에 나타나 번성하기 시작했”다. 이제 위키피디아에 동부회색다람쥐를 검색하면 “미국이나 캐나다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설명이 가장 먼저 나온다.
도시 현대화는 또한 ‘교외화’를 통해서도 야생동물을 도시 인접 지역으로 불러들였다. 1900년대 초중반부터 대중교통 발달, 자동차 소유 증가, 토지 사용 제한, 베이비붐 등의 요인으로 많은 인구가 대도시를 떠나 교외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자연이 잠식되면서 어떤 생물종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어떤 생물종은 오히려 득을 봤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의 모델, 흰꼬리사슴이 대표적이다. 몇몇 야생동물은 “밤에는 교외 지구의 음식과 물을 즐기고, 낮에는 은신처에 숨었다”. 도시와 자연의 ‘경계성’은 양방향으로 야생동물을 도왔다. 2014년 뉴저지주 교외 단독주택 단지에 출몰한 흑곰도 마찬가지다. 의외로 잡식성인 흑곰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굶주린 배를 손쉽게 채웠다. 1970년 20마리에 불과하던 뉴저지 서식 흑곰은 오늘날 5000마리 이상으로 늘어, 뉴저지주는 ‘흑곰밀도’가 가장 높은 주가 되었다.
뉴욕 심장부에 모습을 드러낸 혹등고래. 이케이북 제공
지난 2013년 로스앤젤레스의 명소, 할리우드 힐스에 모습을 드러내 일약 스타가 된 퓨마 ‘P-22’도 풍족한 먹거리와 자신의 영역을 찾아 원래 서식하던 산맥을 떠나 그리피스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P-22’는 공원 내 동물원에서 코요테, 미국너구리 등을 잡아먹으며 손쉽게 배를 채웠고, 오솔길 옆 우거진 숲 사이에 몸을 은신하며 수년을 보냈다.
저자는 이러한 야생동물의 귀환 행렬이 철저히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의 영문판 제목도 ‘Accidental Ecosystem’으로 우연성이 강조되어 있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인간의 공생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우연에 힘입어 야생동물이 도시로 돌아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생물종은 도시에 적응해 개체 수를 늘려나가고 있지만, 모든 생물종이 그런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은 승자에게 초점을 맞췄”으며, “1970년대 이래 전 세계 야생동물의 숫자는 평균 60%가량 감소했다”는 점도 전한다.
과제는 ‘어쩌다’ 도시 생태계에 입성한 이들과 ‘어떻게’ 공존하는가다. 캐나다 앨버타밴프국립공원은 2014년 고속도로를 따라 38개의 건널목을 설치했다.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고속도로를 건널 수 있도록 마련한 구조물이다. 이를 통해 야생동물 충돌 사고가 80% 이상 줄었다. 지난해 필라델피아는 봄·가을 철새 이동 기간에 자정 이후로 고층 건물 조명을 줄였다. 2020년 1500마리 새가 하루 아침에 고층 건물에 충돌해 떼죽음 당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한번의 ‘우연’에 기대기보다는 공존을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