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경과 전문의, 스웨덴·카자흐스탄 등
‘집단심인성질환’ 발병지 직접 찾아 연구
‘집단심인성질환’ 발병지 직접 찾아 연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l 한겨레출판 l 1만9000원 혈압 정상, 혈액 검사 정상, 심지어 뇌파 검사와 반사작용도 정상. 모든 지표가 ‘정상’을 가리키고 있지만, 이 소녀들은 수년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 혼달이라는 소도시에 사는 헬란·놀라 자매 이야기다. 소녀들은 콧줄을 통해 최소한의 영양을 공급받고, 부모는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몇 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준다. 이 자매처럼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인데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은 또 있다. 2015~2016년, 스웨덴에서만 169명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모두 스웨덴에 망명을 신청한 난민의 자녀였고, 대부분 옛 소련과 발칸반도 출신이었다. 아프리카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왜 “멀쩡한” 아이들이 수년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까? 왜 특정 국가(스웨덴)에 사는, 특정 지역 출신 아이들만이 이런 기이한 질병에 걸렸을까? 이들이 겪고 있는 건 ‘개인적 질병’일까, ‘사회적 현상’일까? 아이들을 다시 눈뜨게 하려면 어떤 의료적 개입이 필요할까? 아니, 과연 의료적 개입만으로 이 아이들을 다시 눈뜨게 만들 수 있을까?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은 이런 연쇄적 질문을 불러오는 책이다. 영국에서 신경학과와 임상신경 생리학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지은이 수잰 오설리번은 언뜻 <세상에 이런 일이>(에스비에스)에 나올 법한 “불가사의한” 현상을 차례로 소개한다. 스웨덴, 카자흐스탄, 니카라과 등 각 현장은 동떨어져 있지만 모두 ‘집단심인성질환’(mass psychogenic illness, MPI) 발병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심인성질환이란, 심리적인 원인으로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이다. 이러한 심인성질환이 특정 지역이나 소규모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서 집단으로 발병하면 ‘집단심인성질환’이다. 각종 진단 검사에서 포착되지 않으나, 환자는 명백히 실재하는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심인성질환은 그 자체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불가해한 증상이 특정 공동체에서 집단 발병하기에 집단심인성질환은 자주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직접 발병지를 찾아 두 눈으로 환자를 관찰한 저자는 다른 지점을 짚는다. “불가사의”가 아니라, 질병의 사회·문화적 요소를 간과한 결과라는 것이다. 헬란과 놀라 자매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증상을 ‘체념증후군’(resignation syndrome)이라고 부른다. 뇌파 검사 결과 무의식 상태가 지속되지 않아 기존 용어인 ‘혼수상태’에는 해당하지 않았다. 결국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어떤 행동에 대한 욕구도 없는 상태’를 뜻하는 ‘체념증후군’이 공식 의학 용어가 됐다. 이 증후군은 유독 망명을 원하는 가족의 자녀에게 나타난다. 이들 자매도 스웨덴에 망명을 신청한 야지디족(이라크·시리아·튀르키예가 본고장인 소수민족) 출신이었다. 스웨덴어에 서툰 부모를 대신해 당국의 ‘망명 거부’ 통지문을 가장 먼저 열어본 것은 소녀들이었고, 세번째 거절 통지가 온 뒤 자매가 모두 병에 걸렸다. 박해받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스웨덴에 남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장기간 기대-실망을 반복했고, 종국엔 끝없는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현상은 2005년 처음 공식 보고됐고, 2015년 스웨덴에서 발생하다 201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망명신청자가 대기하는 나우루라는 섬나라로, 2019년에는 레스보스라는 그리스 난민촌으로 옮겨갔다. 스웨덴에서 ‘끝없는 잠’이었다면, 니카라과에서는 ‘집단적 환시’였다. 니카라과 모스키토 해안에 거주하는 부족, 미스키토인 (주로) 소녀들은 ‘낯선 이가 찾아와 자신을 데려가려 한다’는 집단적 환시를 겪었다. 이들은 경련, 발작 등의 증세를 보였고, 이 증상에는 ‘그리지시크니스’(정신병)라는 이름이 붙었다. 집단심인성질환이 꼭 아이들(소녀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카자흐스탄 크라스노고르스크와 칼라치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일부 주민은 ‘집단적 수면’ 증상을 겪었다. 길게는 몇 주까지 잠을 자거나, 갑자기 잠드는 증상 등이 나타났다. 지역, 증상, 환자의 특성 모두 제각각이지만 지은이는 이 사례들을 관통하는 통찰을 길어 올린다. “질병은 사람들의 인식보다 훨씬 더 많이 사회적으로 패턴화되는 행동”이라는 점이다. 증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많은 부분 ‘문화’가 결정한다. 같은 배앓이도 영국인에게는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미스키토인에게는 그리지시크니스의 전조로 해석되곤 한다. 몇몇 미스키토인이 배앓이 이후 환시를 겪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하나의 ‘유형’으로 자리잡으면서 증상의 해석(악마가 잡으러 온다)도, 대응(의사가 아니라 치료사에게 간다)도 달라지게 된다. 미개하다고 비하할 일이 아니다. 지은이는 이런 해석-대응이 해당 문화권 안에서 갖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짚는다. 환시·발작을 통해 미스키토인 소녀들은 “공동체의 도덕적 기준과 성욕 발달 사이의 갈등”을 표출하고, “신체 증상을 통해 주변에 도움을 호소”한다. 때로 “심리적 고통과 갈등을 신체적인 증상으로 외면화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고 생산적일 때가 많”다. 체념증후군도 마찬가지다. “나는 체념증후군을 말보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고통의 언어로 여기게 되었다.” 저자는 아이들이 수년간의 침잠으로, 수년간의 절망을 격렬하게 표출한다고 본다. 크라스노고르스크와 칼라치 주민들 역시 강제 집단이주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무력감과 상실감을 시도 때도 없는 수면으로 표현했다.
영국 국립신경·신경외과병원에서 신경학과와 임상신경 생리학과 전문의로 재직 중인 저자 수잰 오설리번. 한겨레출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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