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에 대한 정치 비평 멈춘
페미니즘에 던지는 논쟁적 질문
“미투 이후 ‘동의’ 여부에 함몰…
‘개취’ 너머 정치 규범 인식해야”
페미니즘에 던지는 논쟁적 질문
“미투 이후 ‘동의’ 여부에 함몰…
‘개취’ 너머 정치 규범 인식해야”
아미아 스리니바산 지음, 김수민 옮김 l 창비 l 2만2000원 “이건 모두 여자라는 인간 종이 내가 가진 가치를 볼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 어떻게 내가 아닌 열등하고 못생긴 흑인 남자애가 백인 여자애와 만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아름답고 절반은 백인인데.” 2014년 5월23일. 스물두살 미국 남성 엘리엇 로저는 이러한 글을 남긴 후 무차별 테러를 감행했다. 룸메이트 3명을 살해한 뒤 그가 향한 곳은 ‘여학생 사교 클럽’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여성 3명을 총으로 쏘았고, 추가로 총기 난사를 이어가다 자살했다. 다수 페미니스트들이 이 글에서 ‘인셀’(비자발적 독신주의자) 특유의 비뚤어진 ‘성적 권리의식’(남성은 섹스할 권리가 있다. 그것이 강압·폭력적인 방식일지라도)을 포착하고 분개할 때, <섹스할 권리> 저자 아미아 스리니바산은 다른 지점에 주목했다. “내가 놀랐던 부분은 인종, 내향적 성격, 전형적인 남성성 결여 때문에 성관계나 연애에서 주변화되었다는 로저의 주장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명백한 무관심이었다.” 로저는 앞선 글에서 순수 백인이 아닌데다(그는 백인-중국계 말레이시아 혼혈이다) 왜소한 체격, “남자답지 않은” 성격 탓에 백인 여성에게 줄기차게 거절당했던 ‘상처’가 범행의 동기가 됐다고 밝혔다. 이런 로저의 자가 진단이 저자는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 “인종주의와 이성애 규범성이 로맨스와 섹스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건 사실이다. 실로 그것들이 가장 깊게 뿌리내리는 곳은 ‘개인의 선호’ 논리를 통해 보호받는 친밀한 관계의 영역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점에 대해 할 말이 전혀 없었던 걸까?” 섹스라는 ‘사유지’가 ‘동의’라는 울타리 속에서 철저히 보호되어 왔지만, 이러한 철학·입장·관행에 ‘점검’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그동안 ‘안티섹스’(가부장제가 남성 지배-여성 종속의 섹스 관행을 형성했다. 섹스·결혼을 거부하라)와 ‘프로섹스’ 혹은 ‘섹스에 긍정적인 페미니즘’ 사이 대치가 이어졌으나, 1980년대 이후 상호 ‘동의’가 이뤄졌다면 섹스의 ‘내용’에는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페미니즘이 주류를 점해왔다. 이른바 ‘성적 자유주의’다.
<섹스할 권리> 저자 아미아 스리니바산. 영국 옥스퍼드대 최연소이자 최초 여성·유색인 올솔스 칼리지 사회정치이론 치첼리 석좌교수인 그는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가르치고 있다. 첫 저작인 <섹스할 권리>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오웰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창비 제공
2014년 총기 난사로 여대생 등 6명을 숨지게 한 엘리엇 로저가 범행 직전 유튜브에 업로드한 살인 예고 비디오의 한 장면.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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