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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김초엽 상상력의 비밀은 ‘○○ 읽기’

등록 2022-09-30 05:00수정 2022-09-30 09:28

책과 우연들
김초엽 지음 l 열림원 l 1만6000원

우연히 에스에프(SF) 소설가가 됐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연구자의 길이 맞지 않음을 알아가던 즈음 에스에프 공모전에 냈던 두 편의 소설이 수상 소식을 전해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딱 1년만 전업 작가로 살아보자고 뜬금없이 결정을 내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지구 끝의 온실>(2021) 등의 작품으로 독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김초엽이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을 통해 고백한 자신의 ‘시작’이다.

‘우연’에 빚진 출발은 작가에게 “밑천이 없다”는 불안감을 남겼다. 과학서와 판타지, 에스에프 소설만 읽었던 “편협한 독서가”였던데다 “삶의 경험도 부족”한 것만 같았다. 이런 불안감을 메꾼 건 “마구 집어넣듯” 읽었던 수많은 책들이었다.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날에는 보통 머릿속에 뭔가를 구겨 넣는다. 책이든 기사든 논문이든. 이따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영상도. 밀어 넣은 글자-혹은 정보-들이 무언가 알 수 없는 반응을 부글부글 일으키기를 기대하면서.”

김초엽 작가가 작업실에서 홀로 했던 숱한 ‘마구 읽기’ 실험은 그에게 언제나 일정한 결괏값을 보장했다. “아무리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아도, 관련된 책을 열 권 정도 읽으면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상상력과 지식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원리’는 에스에프 소설뿐 아니라 논픽션에도 통했다. 2021년 첫 논픽션이자 공저인 <사이보그가 되다>를 쓸 때, 작가는 책의 주제인 ‘포스트휴먼과 장애’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약간이라도 써먹을 만한 자료가 보일 때마다 강박적으로 모으고”, 관련 책과 논문을 수십권 독파하자 “뇌의 해석 틀이 프로젝트 주제와 동기화되는 느낌을 받았”고 그제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소설쓰기는 아는 걸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알아가”는 작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오래도록 자신을 위축시켰던 밑천이 없다는 두려움도 점차 옅어졌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책 읽기가 “읽는 사람의 독서에서, 쓰는 사람의 독서로, (…) 순수한 감탄과 경이에서 벗어나 표면 아래 설계도를 더듬는 방식으로” 양상이 달라진 건 손실이자 수확이다. 예전처럼 편애하는 책만을 순수하게 몰입해서 읽지는 못하지만, 대신 낯선 책에 실려 미지의 영역에 곧잘 다다른다. “잘못 탄 버스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도시의 낯선 장소로 나를 데려가 주는 것처럼.” 작가가 우연히 만난 책들은 필연적으로 그의 세계를 한 뼘씩 넓혀주고 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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