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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K 문학판 BTS 김혜순·최돈미 짝꿍, 시를 이야기하다

등록 2022-09-25 16:54수정 2022-09-27 02:52

서울국제작가축제 김혜순-최돈미 시인 대담
김혜순 시집 영어로 번역해온 최 시인
영미·유럽에서 수상하며 세계적 주목받아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 왼쪽부터 진행자 김행숙, 김혜순, 최돈미 시인. 김은형 기자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 왼쪽부터 진행자 김행숙, 김혜순, 최돈미 시인. 김은형 기자

‘환상의 콤비’. 시인과 출판인들은 두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김혜순(67) 시인과 최돈미(60) 시인은 각자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창작하면서 오랫동안 짝을 이뤄 활동해왔다. 최 시인이 김 시인의 시집을 영어로 번역해 한국 바깥에 알려온 것. 두 시인의 공동 작업이나 다름없는 김혜순 시인의 영역 시집들은 영미권과 유럽에서 주목받으며 2019년에는 <죽음의 자서전>으로 시문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캐나다 그리핀시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김혜순 시인은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한국 문학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세계를 함께 다니면서 낭독 행사에 참여해온 두 시인이 처음 한국에서 한 무대에 올랐다. 지난 23일 개막한 ‘2022서울국제작가축제(SIWF)’의 둘째날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이다.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왼쪽)-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 김은형 기자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왼쪽)-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 김은형 기자

두 시인은 각자의 대표작들을 낭독하며 이날 대담을 시작했다. 김혜순 시인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 ‘명희’네 집의 장서들을 문학에서 철학까지 독파한 뒤 “책의 언어들로 (내 안이) 꽉 차고 넘치게 되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창작을 시작한 계기를 먼저 말했다. 그는 “친구네 집은 세계문학전집부터 사상전집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그 책을 모두 읽은 건 그 집 식구들이 아니라 나였다. 그러면 이 책들은 누구의 책일까, 내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시집도 마찬가지로 나온 다음에는 내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돈미 시인은 통신사 사진기자였던 아버지에게 영향받아 미국에서도 분단 상황 등 한국 현실에 천착한 시집과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전미도서상, 맥아더펠로우십 등 주요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최 시인은 “이민 간 뒤 오랫동안 나의 언어가 점점 사라져서 오랫동안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썼는데 김혜순 선생의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내 목소리를 찾아 나갔다”고 말했다. 최 시인은 ”선생님과 함께 수다를 떨며 번역을 해가는 과정에서 내 혀가 떠돌이, 망명자의 혀라는 걸 깨닫게 됐고 그 혀로 글을 쓰게 됐다. 번역은 내가 언어를 되찾는 작업이기 때문에 하늘을 봐도, 새를 봐도,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김혜순 시인. 김은형 기자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에서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김혜순 시인. 김은형 기자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에 참석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최돈미 시인. 김은형 기자
서울국제작가축제 행사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에서 열린 김혜순-최돈미 시인 대담 ‘나란히 걷는 언어들’에 참석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최돈미 시인. 김은형 기자

이런 최 시인이 대해 김혜순 시인은 ”시인으로서도 번역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나의 시뿐 아니라, 시간과 역사를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 시인의 전미도서상 수상작 <디엠지 콜로니>는 전쟁과 분단이 남긴 상흔을 영어와 한글, 사진 자료들로 완성한 작품이다.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난 최 시인은 한국에 올 때마다 태어난 동네를 찾아가 지난 시간의 흔적을 찾는다. 올해는 행사보다 일찍 도착해 광주도 찾았다. 그는 “나는 없어진 자국들을 찾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을 찾아 새로운 기억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게 나의 일”이라면서 한국전쟁뿐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등 폭력이 새겨진 기억(역사)을 글로 쓰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시인은 코로나로 인한 단절의 경험에 대해서도 말했다. 김혜순 시인은 “지난 3월 오미크론을 앓으면서 내 몸은 하나지만 이 세계의 다른 몸들과 연결된 몸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기도 한 것이다. 나, 나, 나, 나를 넘어 우리가 비인칭의 주체인 것을 느껴야 한다”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준 병이라서 옮긴 딸에게 고마웠다”고 웃었다.

최돈미 시인은 생활이 단순해져 1년 반 동안 김혜순 시집 <날개 환상통>을 번역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선생님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또 이 기간 처음으로 써 본 번역일기를 다음 책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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