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이후 초판 30년 수집
김기태 교수, 6만5000종 가운데
15권 엄선 “발견의 재미” 술회
김기태 교수, 6만5000종 가운데
15권 엄선 “발견의 재미” 술회
우리 책의 근원을 찾아가는 즐거운 독서 여행
김기태 지음 l 새라의숲 l 1만4000원 책은 저자의 글만 담지 않는다. 본디 울력의 공정을 밟는 제품이라, 한 권의 책을 펴면 이 ‘물성’을 빚어낸 발행인, 편집자, 출판사, 인쇄공의 세계, 그들이 공유하는 시대상, 하물며 인지의 붉은 인주까지 함께 펼쳐지기 마련이다. 서지가 양피지(가공 양가죽)였던 중세 유럽에선 양 한 마리를 잡아야 겨우 2장 나왔다 하니 책의 초판본을 쥔다는 건 한 시대, 한 역사를 고유하게 품어둔다는 얘기다. 문명적 화석.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 쉬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한국 전후 문학의 고유명사라 할 법한 최인훈의 <광장>은 1961년 2월 단행본 출간됐다. 값 900환, 발행자 주변원, 인쇄소 광명인쇄공사, 발행처 정향사(등록번호 230)…. 화폐단위 환은 이듬해 화폐개혁으로 사라지는데 책도, 작가의 말도, 값을 포함한 서지정보의 이후 어쩔 수 없는 수정도 모두 이승만 정권의 퇴출과 새 공화국의 출범이란 시대와 깊이 결속된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에 만족치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작가의 말) 최인훈은 작품도 10차례가량 개작한다. 1968년 신구문화사, 1973년 민음사 재출간 때 표현 등을 수정하고, 1976년 ‘최인훈 전집’ 초판에선 어떤 은유를 직접 표현으로 선명히 하기도 했다. 미학적 획을 그은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은 1966년 2월 창우사에서 나왔다. 동명의 단편과 ‘무진기행’ 등 11편을 묶은 소설집으로 장정(책 꾸밈)까지 직접 작가가 한 사실이 서지정보로 확인된다. 380원짜리 초판본은 한달여 만인 3월말 재쇄 발행한다. 그림과 영화 각본·감독으로까지 명성을 얻었던 그가 “고독한 자들은 많은 것을 탐내지 않는다. 남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남에게서 배우려고 할 뿐이다. 항상 등 뒤엔 깊고 물살 빠른 강물을 두고 말이다”고 새긴 ‘후기’는 그 시절 바랜 종이 위 군살 없는 타이포로 더 진실되어진다. “이 책이 백만부쯤 팔림으로써 창우사의 황(순필) 사장님께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스레까지. 지난 30여년 도합 6만5000종에 이르는 초판본·창간호를 수집한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이들을 “발견과 앎의 기쁨을 주는 매체”라 이른다. 아무렴 불변의 사물로서 책이 전개시키는 통시성 때문이겠다. 스토리는 되레 낡을지언정 ‘책’은 더 고귀해지는 까닭이고, 발터 베냐민이라면 디지털이 스토리를 무한복사할지언정, 끝내 옮기질 못하는 ‘아우라’가 있어서라 말하리.
1925년 처음 출간된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은 1950년 2월 숭문사에서 25년 전의 초간본(매문사) 형태로 발행되었으나 전쟁으로 절판되고, 이듬해 3월 재발행된다. 전쟁 중인데도 11월 재쇄 발행될 만큼 대중과 널리 만났다. 사진은 1951년 초간본에 실린 시. ‘진달래꽃’은 <개벽>에 발표된 지 올해로 100주년이다. 새라의숲 제공
1951년 숭문사에서 발행한 <진달래꽃> 초판본의 간기면(간행기록을 담은 쪽). 새라의숲 제공
김병익의 문화논집 <지성과 반지성>의 초판본의 간기면. 1966년 민음사를 설립한 박맹호 대표(1933~2017)가 발행자로 기록되어 있다. 새라의숲 제공
유언으로 절판을 당부한 법정스님의 세번째 수필집 <서 있는 사람들> 초판본(1978년)에 실린 초상. 새라의숲 제공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초판본(1989년)의 간기면. 1987년 10월 국내 효력이 발생한 ‘세계저작권협약’에 따라 카피라이트(copyright, 저작권)을 뜻하는 © 표시가 있다. 한편 현암사(시작은 건국공론사, 1945년)는 1970년 국내 최초로 출판제작자 실명제를 도입해 편집진도 저작권 정보가 담긴 간기면에 함께 소개한다. 새라의숲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