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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그러고도 손님이야?…그 도시에 삐뚤어진 책방이 있다

등록 2022-09-16 05:00수정 2022-09-16 11:02

스코틀랜드 최대 헌책방 20년 주인
숀 비텔의 작정한 ‘손님 뒷담화’

‘책으로 설레는 독자’ 향한
사모와 애증의 유쾌한 반어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세상 끝 서점을 찾는 일곱 유형의 사람들
숀 비텔 지음, 이지민 옮김 l 책세상 l 1만3800원

“나는 절대로 구매자의 관심사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는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헌책방을 21년째 운영 중인 숀 비텔의 책에서 밑줄 긋게 된 한마디. 책 장인의 잠언인 양 이 시대 독자의 다른 무엇을 꿰뚫는 시력과 시선을 예상하게 한다. 하지만 틀렸다. 책은 시종 그의 서점 더북숍을 찾는 손님들에 대한 ‘뒷담화’로 꿰매어 있다. “내가 알기로 적어도 ‘손놈’(원 표현은 홑따옴표 친 customer)에게까지 관대한 서점 주인은 없다”는 신념과 “불쾌감을 더 주기 위해” 린네의 생물분류법을 빌려 그이들을 구별하는 의지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헌책방 ‘더북숍’. 사진 콜린 키니어(Colin Kinnear), 책세상 제공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헌책방 ‘더북숍’. 사진 콜린 키니어(Colin Kinnear), 책세상 제공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바쁜 ‘전문가 속’(학명: peritus·페리투스) 아래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집착으로 타인과 차별화하고 자족하는 ‘전공자 종’(doctus·독투스), 온갖 것에 끝도 없는 불신과 비판의 논리를 들이대 피하는 게 상책인 ‘성가신 자 종’(homo odiosus·호모 오디오수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속’ 아래 서점에 아이를 슬쩍 맡기고 부모가 쇼핑을 가는 ‘버려진 아이 종’, ‘얼쩡거리는 이 속’ 아래 성애물 코너 책을 철도 코너에서, 때로 겉표지를 바꿔, 보는 ‘성애물 성애자 종’이나 함량 미달의 책을 서점에 팔려고 자랑하는 ‘자비 출판 저자 종’ 등 9개속 38개종(으로 분류한) 서점 고객들을 소개한다.

떨떠름한 스코틀랜드식 농담이 배인 건지 알기 어려울 정도, 있더라도 웃기 어려울 정도로 저자는 혐오와 냉소를 작정하고 있다. 직장 퇴직을 앞둔 남편 선물을 구하는 여성에게 관심사에 맞춰 겨우 “발견”해 준 폴 카라우의 <위대한 서양 지선 종착역>을 막상 펼쳤더니, 예의 성애물 성애자가 껴둔 채 놓고 간, 헬렌 카플란의 <섹스 테라피 삽화 매뉴얼>이 전개되어 기함했다는 일화 따위를 보면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저무는 서점 시장에서 숀 비텔의 진짜 냉소는 활자가, 책이 외면받는 세태에 대한 환멸에서 비롯해 보인다. 실상 서점을 서성대는 저들의 백태를 세세히 관찰하고 기억하며 “그립다” 속내를 들춰내고 만달까. 번역 제목(원제는 ‘서점에서 보게 되는 일곱 유형의 사람’)이긴 하나 역으로 “누추한 이들”로도 빚어진 “귀한 서점” 주인이 코로나 팬데믹까지 거치며 거듭 그들을 모나게 희구하는 셈.

더북숍의 내부 전경. 사진 책세상 제공
더북숍의 내부 전경. 사진 책세상 제공

책에서 놀라운 것은 언급되는 중고서적의 연식과 종류다. 고서 수집가를 자극하는 1786년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쓴 로버트 번스의 시> 초판본 중에서도 킬마녹판(킬마녹 마을 존 윌슨의 한정출간판으로 612권 중 84권만 있다), 1780년 클레랜드의 <패니 힐>(지금은 그다지 외설적일 수 없는 성애물), 1726년 뉴턴의 <수학원리> 3판 등이 그러하고, 1970년대 서적과 잡지들 정도야 아무런 구매가치가 없다고 얘기되는 풍토가 그러하다. 실로 영국인 것이다. 여전히 책 손님의 분류도 가능한 까닭이겠다.

상냥하지 않은, 그러나 그 세계가 전부인 책방 주인의 의도치 않은 영문학 추천도서도 새겨둘 만하다.
더북숍의 주인 숀 비텔. 사진 책세상 제공
더북숍의 주인 숀 비텔. 사진 책세상 제공

“시대의 한계를 초월하는 작가는 늘 있기 마련이다. 버컨, 스티븐슨, 이언 플레밍, 라이더 해거드의 책은 여전히 잘 팔리는 듯하다… 물론 이 모든 작가의 희귀본은 수집상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물건이지만 이러한 수집상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0년 후 힐러리 맨텔, 이언 매큐언, 줄리언 반스를 비롯한 이 시대의 거물들은 ‘불멸의 문학’으로 격상될까… 조앤 K. 롤링이나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시대의 제인 오스틴이 될까… 도나 타트의 놀라운 대하소설은 톨스토이, 호메로스, 하디의 작품처럼 받들어 읽히게 될까? 천재적인 앨런 베넷의 예리한 사회 관찰이 100년 후 독자의 눈에도 여전히 의의가 있을지 누가 알까?”

이런 서점과 서점의 영혼이 서성대는 도시를 가본 이들에게 그렇지 않은 도시는 돌연 황무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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