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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잠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등록 2022-09-16 05:00수정 2022-09-16 10:49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밤의 이야기
키티 크라우더 지음, 이유진 옮김 l 책빛(2019)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 아기는 잠자는 법 모르는 거 알았어? 졸리면 그냥 자면 되잖아. 그런데 아기는 잠이 막 와도 잘 줄을 몰라서 운다? 우리는 다 배워서 자는 거야.” 물론 아기를 재워본 적이 없는 나는 전혀 몰랐다. 아기를 재우느라 자기 잠을 설치는 친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 역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씻는 것도 먹는 것도 아니고 ‘자는 것’을 대체 어떻게 가르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기에게 잠드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기가 어찌어찌 잠이 들었을 때 도로 깨워서 “잘했어, 바로 이렇게 자는 거야”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잠자는 법을 배워가는 아기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잠자기를 배우는 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해보다가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실이 있다. 어른인 나도 잠을 못 자서 애먹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 뒤척일 때도 있지만, 별 이유 없이 잠들지 못할 때도 있다. 한번 ‘잠이 안 오네’ 하는 생각이 들면 잠이 안 오는 걱정을 하느라 잠을 못 잔다. 그런 밤은 세상에 혼자 있는 것 같다. 나는 책에서 본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힘을 빼는 상상을 하거나, 마치 이미 잠이 든 사람처럼 숨을 고르게 쉬어본다. 잠에 신경 쓰지 않는 척하고 딴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제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누가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하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잠자리 그림책이 필요한 이유가 그런 것이다. 어린이도 잠이 들 때는 종종 외롭고 두려울 테니까. 알맞은 잠자리 그림책은 어린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몸을 편안하게 하고, 이야기의 호흡을 따라가서 안정된 결말을 맞이하고, 감상 속에서 가만히 잠이 들게 한다.

<밤의 이야기>는 다정한 그림책이다. 잠자리에 든 아기 곰은 엄마 곰에게 이야기를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들려달라고 조른다. 그림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조르는 어린이 같다. 엄마 곰은 일과인 것처럼 아기 곰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숲속 동물들에게 잘 시간을 일러주는 징을 울린 다음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징을 울리는 밤 할머니, 열매를 찾는 모험 중 낯선 잠자리에서도 가족들이 자기를 기다릴 것을 확신하며 잠드는 여자아이 소라, 시인 수달의 도움으로 잃었던 잠을 되찾는 부 아저씨. 엄마 곰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주인공들이 조용히 잠드는 장면으로 끝난다. 밤을 분홍색으로 표현한 그림은 화려하다고 할 만큼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든다. 어서 잠 속에 들어가고 싶다.

엄마 곰이 방에서 나간 뒤 아기 곰의 잠자리에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찾아온다. 아기 곰은 모르는 듯하지만 엄마 곰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문을 닫는다. 밤 할머니, 소라, 부 아저씨와 나란히 잠이 든 아기 곰의 표정이 편안하다. 어린이는 물론이고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른도 마음 놓고 잘 수 있을 것이다.

김소영/독서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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