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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지금 신고 있는 신발에 스민 피, 땀, 눈물 아시나요

등록 2022-09-02 07:00수정 2022-09-02 10:03

세계화된 신발산업의 모든 것
저임금, 위해환경 노출된 노동자들
더 싼 임금에 난민들 악용돼
한국기업, 소비자도 책임의식 가져야
일년에 전세계적으로 290억 켤레 이상 만들어지는 신발 산업은 동유럽, 아시아, 남미 등의 저임금 노동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다. 생산량 만큼이나 쏟아지는 신발 폐기물은 환경 오염을 가속화시킨다. 2017년 서울로7017 개장을 기념해 버려진 신발 3만여 켤레로 완성한 설치작품 ‘슈즈 트리’. 연합뉴스
일년에 전세계적으로 290억 켤레 이상 만들어지는 신발 산업은 동유럽, 아시아, 남미 등의 저임금 노동에 기대어 유지되고 있다. 생산량 만큼이나 쏟아지는 신발 폐기물은 환경 오염을 가속화시킨다. 2017년 서울로7017 개장을 기념해 버려진 신발 3만여 켤레로 완성한 설치작품 ‘슈즈 트리’. 연합뉴스

풋워크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
탠시 E. 호스킨스 지음, 김지선 옮김 l 소소의책 l 2만1000원

대규모 만화 관련 박람회인 ‘코믹콘’과 같은 행사가 운동화를 주제로도 열린다. 미국, 캐나다에서 시작해 지금은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해마다 열리는 ‘스니커 콘’이다. 값비싼 한정판 스니커들이 총집합해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이곳의 주요 참여 그룹 중 하나는 청소년이다. “길을 가다가 별로인 운동화를 신은 사람을 보면 그다지 친하게 지낼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요.” <풋워크> 저자가 런던 스니커 콘에서 만난 열네 살 레이먼드는 런던의 빈민 지역에 살지만 용돈을 열심히 모아 값비싼 운동화를 산다. 고가의 운동화는 본인을 자랑하기도 좋지만 운이 좋으면 이런 행사에서 산 가격보다 훨씬 더 비싸게 팔 수도 있다.

레이먼드 같은 운동화광을 겨냥해 나이키 등 글로벌 스포츠 기업은 인기 운동선수나 연예인의 이름을 붙여 한정판 제품을 내놓는다. 스포츠 스타 마케팅의 대명사인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은퇴 한참 뒤인 2015년에만 나이키를 통해 1억달러(약 1300억원)를 벌어들였다. 반면 나이키 운동화를 만드는 아시아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은 한 달에 20만~30만원 수준이다. 이것도 그나마 안전시설과 최소한의 복지를 갖춘 공장에서 일하는 대도시 공장 노동자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다.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운동화 공급 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재택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씩 일해도 한 달에 10만원을 쥐지 못한다.

<풋워크>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가 쓴 신발 산업의 모든 것이다. 신발 한 켤레를 짓는 데 들어가는 수십 가지 공정은 미국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넘나들며 이뤄진다. 브라질 도축 농장에서 나온 소가죽은 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서 무두질을 거쳐 피혁으로 바뀌고 이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로 옮겨져 신발의 형태를 갖춘 완성품이 되어 전세계 소매점까지 국경을 넘는다. 이 과정 사이로 고무와 금속, 실과 끈, 포장 상자 같은 다른 구성품들이 3차, 4차 하청을 거쳐 가내수공업의 형태로 끼어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운동화와 구두는 평균 잡아 1인당 스물네 켤레(영국 여성 기준)씩 신발장을 채우고 그중 일부는 가격표도 떼지 않은 채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저자는 신발에 담긴 불평등과 노동착취뿐 아니라 환경오염, 폐기물 문제, 그리고 끊임없이 소유욕을 자극하는 거대 기업의 마케팅까지 낱낱이 파헤친다.

베트남 신발공장 노동자들의 작업 모습. 유튜브 DINH VANG 캡쳐
베트남 신발공장 노동자들의 작업 모습. 유튜브 DINH VANG 캡쳐

파키스탄 사람 무함마드 이크발은 매일 30분을 걸어 공장에서 신발 부품 한 무더기를 받아온다. 아내, 10대의 두 딸은 아버지와 함께 아침 8시부터 밤늦게까지 ‘신사용’ 갑피(구두 겉가죽)를 꿰맨다. 네 가족이 온종일 매달려야 끝낼 수 있는 작업으로 받는 돈은 하루 8달러가 되지 못한다. 1인당 2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임금 불평등은 재택 노동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일감이 없을 때는 당연히 임금도 없다. 코로나 팬데믹 때 신발 생산이 줄면서 가장 먼저 일거리가 사라진 게 재택 노동자들이다. 또한 대부분의 재택 노동자는 신발 접착에 쓰는 산업용 본드를 안전 장갑 없이 사용한다. “매캐한 화학약품 냄새로 뒤덮인” 방 안에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제시간에 납품하기 위해 작업대 위에서 세끼 밥을 먹는다. 이런 재택 노동자는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공장에도 가기 힘든 여성이 대부분이다.

북미, 유럽에서 동유럽과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움직이는 신발 산업이 발견해낸 새로운 노동자군은 난민이다. 튀르키예에는 내전이 벌어진 시리아를 비롯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아랍권 난민 수백만명이 유입됐다. 이들은 형편없는 임금으로 튀르키예의 주력 산업인 티시에프(TCF, 섬유·의류·신발) 업종에서 일한다. 아이들까지 더 낮은 임금에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은 노조도 없고 감사도 받지 않는 2차, 3차 하도급 작업장에서 일한다. 유럽연합이 아랍 난민들의 유럽 유입을 막기 위해 요르단 정부와 난민협정을 맺고 요르단에 투자해 세운 공장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파키스탄의 전통 샌들 ‘차팔’을 복제해 팔아 큰돈을 번 영국 패션 기업 ‘폴 스미스’를 예로 들면서 “인간은 거부하면서 문화는 가져다 쓰는” 유럽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는다.

신발 제작 노동에는 아이들도 흔하게 동원되지만 지나친 저임금 탓에 신발을 살 수 없는 여건의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신발 제작 노동에는 아이들도 흔하게 동원되지만 지나친 저임금 탓에 신발을 살 수 없는 여건의 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소의 “살가죽”을 신발에 쓰는 “가죽”으로 바꾸는 무두질은 노동자의 건강권뿐 아니라 지구 환경에도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 방글라데시의 하자리바그 무두질 구역은 “크롬, 아황산가스, 포름산, 염화암모늄 같은 화학물질이 매년 10억달러어치를 초과하는 수출품을 무두질하는 데 이용되었다. 하자리바그의 무두질 공장들은 부리강가강의 모든 물고기를 죽였다. 그곳은 세계 5위의 오염 지역이 되었다.” 보호 장구 없이 무두질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들이 입는 피해는 제대로 조사된 적조차 없다.

어떤 이들은 신발 산업의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악한 재택 노동부터 당장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빈번하게 노출되는 저임금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로봇 공장을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해결책에 반대한다.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타이 등에서 티시에프 산업의 80%를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2014년 대만의 세계 최대 스포츠 신발 생산업체인 유원공업 파업과 2015년 노동자들과 미국 학생들이 힘을 합쳐 나이키의 노동자 단체 나이키 하도급 공장 감시 거부 선언을 철회시켰던 사례를 들면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언급된 이 당시 가장 문제가 심각했던 나이키 하도급 공장 사례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 한세베트남이었다. 세계화된 노동으로 완성된 말쑥한 신발 한 켤레. 여기에 담긴 땀과 피와 눈물의 책임에서 한국 기업도 한국 소비자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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