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무리가 2022년 8월16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 앞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다. 호흡하려고 물 밖으로 나온 돌고래는 6마리지만, 20여 마리가 함께 움직이는 무리로 추정된다. 류우종 기자
이번주 지인과 이런 문자를 나눴다. “음악이 아니고서는 하루가, 카레가 아니고서는 일주가, 가을이 아니고선 일년이 버티기 어렵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듣긴 해도 (대중)음악은 집약된 상투와 뻔하게 깊은 통속으로 삶의 진실들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가령 2012년 서울 영구임대아파트에서 100일 동안 9명이 목숨을 끊은 사건을 취재하고 기사 쓰며 하염없이 들은 노래, 2009년 한달 위장취업 뒤 일해도 가난해지는 노동자의 삶을 온전히 전해보고자 들은 노래, 그러니까 활자가 메마를까 조바심내며 매달린 물기 서린 노래들의 유튜브는 지금 비슷한 이유로 틀어보면 “2022년에도 이 노래 듣는 분 손 (들어요)” 취지의 댓글(영어·한국어)이나 내 사연인 줄로만 알았던 당신의 사연이 꼭 붙어 있다. 통속으로 맺어지는 인연들이랄까. 지구상 동물 가운데 가장 길다는 고래의 노래는 11시간이면 지구 한 바퀴를 돈다. 1시간 노래하면 10시간 뒤 제 노래를 다시 듣는다는 게 한 음악가의 설명이다.
이런 고래 노래 같은 인연을 안 이상 서평 기자들이 엄선하여 톺은 이번주 책은 여러분과 활자로만 만나지 않았으면 바라본다. 가령 흑인 여성운동 담론의 고전 <여성, 인종, 계급>(앤절라 데이비스)은 아무렴 블루스 ‘블랙 매직 우먼’(산타나)과, <데미안>이 싸구려 커피 한잔값에 거래되는 풍토를 지적한 홍순철 칼럼은 고혈압에 도움 된다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과, 독립운동 계급해방에 투신한 김학철의 자서전(<최후의 분대장>)은 정태춘의 ‘5·18’ 을 틀어두고서 읽어보면 어떨까. 억지라 하실지도 모르겠다. 독일 음악가가 입담 좋게 써나간 <이토록 재밌는 음악 이야기>와 국가인권위에서 일하며 글도 쓰는 김민아의 <음악이 아니고서는>을 참고했다. 곧 가을이니 이 1년도 버티겠다.
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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