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
마중물 샘의 회복 일지
최현희 지음 l 위고 l 1만7000원
복직 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최현희 교사(맨 오른쪽)가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최현희 교사 제공
2017년 7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인터뷰에서 남학생들로만 채워지는 운동장 현실을 지적하자 ‘남초’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났다. 고학년 여학생이 체육 활동에서 소외되는 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온 건 수십년째인데 유독 이때 시끄러웠던 건 교사가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나오면 어김없이 백래시가 등장하는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고, 당시 <조선일보> 등에서 틀린 사실로 뒤범벅된 보도를 하면서 온라인 상의 광기에 기름을 부었다. 소송을 통해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내고 일부 학부모 단체의 공격도 제어됐지만 해당 교사는 만신창이가 됐다. 4년 가까이 지난한 시간을 보낸 뒤 다시 교단에 선 최현희 교사가 쓴 <다시 내가 되는 길에서>가 나왔다. 한 개인이 무너진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애써온 시간과 현장 교육자로서의 고민이 담긴 기록이다.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만난 C는 자기 자리에서 해도 되는 발표를 굳이 교실 앞으로 뛰쳐나와서 하는 여학생이었다. 체육 시간에는 날쌔게 뛰어다녔고 (…) 6학년이 된 C를 오랜만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그만의 ‘야생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같은 해, M은 C에 버금가는 우리 반 개구쟁이였다. (…) 해가 몇 번 바뀌도록 M은 계속 M다웠다.” “같은 지역 시대를 살고 있지만 두 어린이를 향한 사회적 압력이 얼마나 달랐을지” 깨달으면서 저자는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다. 이십년 전에도, 인터뷰 당시에도, 지금도 운동장 풍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저자는 이어서 썼다. “이제는 뇌에 성차가 있다는 주장 대신, 집요하게 성차를 강조하는 사회가 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휴직을 두번이나 해야 할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얼굴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았던 공격과 욕설은 잠깐의 불쾌함을 견디고 애써 무시하는 게 가능했다.” 저자에게 큰 상처가 됐던 건 “유난스럽게 굴면 저렇게 돌을 맞는구나, 나는 더욱 조심해야지 하는 조용한 다짐들, 옆자리의 동료가 당한 고통이 나와는 별 상관이 없을 거라는 믿음”들이었다고 고백한다. 첫번째 복직 뒤 그는 “학교를 장악한 두려움의 공기”를 학생들에게서 얻는 위로나 용기로 갈음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 이러한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학생들은 교사를 실망시키고 좌절시킬 권리가 있다. 학생을 보며 학교의 억압을 견디는 것은 자식을 위해 무작정 참고 견디는 부모가 자식에게 그러듯 결국에는 학생들에게 모종의 보상을 바라게 한다.”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최현희 교사는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 제안을 받았지만 모두 고사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기억도 희미해졌을 4년 뒤 그는 그중 한 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해서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책을 내자는 제안이 많았는데 사실 저는 페미니즘이 교육이나 수업의 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교사로서 늘 하는 수많은 고민 중 하나인데 이것만 발라내서 이야기를 쓰는 게 저한테는 불가능해 보였어요. 책을 쓰기로 다시 마음먹게 된 건 고초를 겪었지만 꺾이지 않고 제 신념을 지키면서 일상을 되찾아간다는 확신이 비로소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그동안의 시간을 정리했죠.”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그가 말한 출간 이유다. 그는 “세상이 점점 더 나빠지고만 있는 거 같을 때마다 버티고 기록하고 연결되겠노라고” 한 다짐이 쌓여 책으로 만들어졌다고 썼다. 292명이 같은 다짐으로 북펀드에 참여해 책을 완성했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