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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비루한 삶도 존엄한 죽음을 말하게 하라

등록 2022-08-26 05:00수정 2022-08-26 14:16

<죽음의 시간> 다큐 만든 기자 출신
존엄에 기반한 ‘죽음의 형태학’ 역작
4년간 유럽·북미 오가며 미시적 접근
“생애말기 자기결정은 어디까지” 추적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죽음의 격
필연의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한 방법들에 관하여
케이티 엥겔하트 지음, 소슬기 옮김 l 은행나무 l 2만원

현재 조력사·안락사를 아울러 견인하는 가장 진취적인 명제는 ‘죽을 권리’일 것이다. 정반대엔 ‘낙태 금지론’을 둘 만하다. 속내가 뭐든 ‘생명 존중’을 절대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법망 밖에서 임신중지(낙태)를 도왔던 의사와 죽음을 도운 의사 사이 거리는 멀지 않고, 둘을 비판하는 논리들은 서로 더 가깝다.

소위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차이가 있으나 특정의 ‘자격’을 요구한다. 이와 달리, 보편적 권리로서의 자기결정이 바로 죽을 권리라는 입장에서 존엄사 금지는 반인권이고, 자격은 강제된 차별이 된다.

지난 6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발의(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되며 국내 최초의 “조력존엄사법”으로까지 소개되었으나, 사회적 논란은 그리 크지 않았다. 몇 가지가 맞물려 보인다. 사회 주류의 무관심 내지 외면, 물에 잠긴 반지하처럼 이승도 존엄하기 어려운 현실, 하여 자살이 자발적 죽음의 영역을 꽉 채운 나라. 이른바 ‘조력사법’은 이러한 한국 사회에 결코 이른 발의가 아니다.

안락사와 조력사를 아울러 ‘존엄사’라 부른다. 하지만 용어에서부터 찬반이 거세다. 플리커
안락사와 조력사를 아울러 ‘존엄사’라 부른다. 하지만 용어에서부터 찬반이 거세다. 플리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죽음의 격>은 환자 넷, 의사 둘을 주인공 삼아 19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력·안락사의 다단한 쟁점과 흐름을 미시적으로 짚어낸 역작이다. 대목에 따라 찬반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건 들어갈수록 죽음과 삶, 자살(조력)과 안락사의 묘연한 경계, 궁극적으로 이 존엄과 저 존엄의 아득한 경계를 저마다의 처지에서 감당해야 하는 탓이겠다.

1975년 미국의 퀸랜 사건. 식물인간이 된 스무살 딸(퀸랜)에게 인공호흡기를 떼달라는 부모의 요청이 거부된다. 가족이 요구한 “품위와 존엄성을 갖추고 죽을 자격”과 “(나치의) 가스실을 작동하는 것과 같다”는 병원의 입장이 부딪혔다. 당시 뉴저지법원은 “합당한 방치”라며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지금도 유효한 소극적 안락사의 논리이기도 하다.

‘임종 과정’(국내법상 회생·회복 가능성 없고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서의 연명치료 중단은 현재 한국에서도 합법이다. 존엄사는 그 전 단계부터 약물 등을 이용해 생애 말기를 단축하려는 이들을 의료진이 돕는다(조력사)거나, 아예 약물 등을 직접 주입해주는 행위(안락사)까지를 아우른다. 1970~80년대 연명치료 중단도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단계별로 이해관계자(의료·호스피스·종교계 등)와 부딪히지만, 자못 이러한 양태의 죽음을 허용할 때 같은 양태의 삶을 위협하기도 하는 게 존엄사다. 나치가 자행한 우생학 안락사와는 다르더라도, 죽을 권리가 누군가를 상대로 ‘죽을 의무’로 확대 변질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존엄사의 ‘존엄’이 내재한 모호성과도 연결된다. 인간의 존엄을 근거로 사형이나 안락사를 반대도 지지도 한다. 말하자면 흐릿한 그림자로서의 존엄만큼, 색과 온도를 띤 ‘고통’과 ‘수치’의 고백들 그리고 생애 마지막의 ‘형태’에 저자가 집중하는 이유로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조력사’ 풍경은 이렇다. 암 투병 중이던 브래드쇼(90대)는 요양원에서 지내다 조력사 전문점을 통해 2019년 1월9일을 시행일로 ‘서비스’를 요청한다. 신청서류 제목은 ‘내 삶을 인간답고 존엄성 있게 마감하기 위한 지원사 약품 요청’. 자식들도 다 모인 방에서 의사는 브래드쇼에게 또 서명해야 할 최종 서류를 건네며 “여기 서명하고 삶을 끝내줄 약을 드시겠다고 진술하길 (캘리포니아주는) 바라죠” 말하고 자식들은 “아버지… 서명하셔야죠?”라고 말한다. 의사는 약 복용 후 2시간 내 사망을 목표로 한 표준 투약 계획에 따라 두 가지 약물을 준비했다. 모두 브래드쇼가 들고 마셔야 한다. 그사이 가족들은 대화했다. “아버지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너보다 즐거움을 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단다” “저 위에 도착했을 때 알려줄 방법이 있다면 꼭 해주세요” “노력해보마” “웃고 계시네요”….

미국 내 조력사 확대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캘리포니아주(2016년 시행)는 죽음에 가까운, 정신능력이 있는 말기질환 환자로 조력사 대상 자격을 제한한다. 방식에선 ‘자기 투여’와 ‘섭취’가 의무다. ‘자기결정’ 여부에 대한 공적 개입이다. 하지만 신체능력 조건에 따른 차별, 동시에 휠체어에 몸을 실어 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주사 밀대를 밀어 약을 투여하는 방식 따위가 고안되고 마는, 말하자면 법의 틈을 국가가 방치·조장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구체적일수록 틈은 좁혀지는가. 세계 최초 ‘존엄사법’이란 이름의 조력사를 허용한 미국 오리건주(1994년 법 통과)의 경우, 18살 이상의 주 거주자로 살날이 6개월 이하로 예상되는 말기질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의사 2명의 잔여 생애 검증, 정신건강 평가가 필요하고, “죽고 싶다”는 요청을 15일 간격으로 2차례 해야 한다.

“존엄사”라는 용어부터 반대하는 이들의 첫째 논거는 의학의 본질과의 충돌이다. 치료 의무,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제1원칙의 위배. 하지만 이는 현대 의학의 원죄론과 다시 맞선다. 죽음조차 극복할 듯 비즈니스화된 의학(‘노인의학’을 포함)은 과잉치료의 다른 말이고 종내 “죽음을 길게 끄는 체계”를 가져왔단 주장이다.

“호스피스의 목표는 환자의 죽어가는 과정을 돕는 것이지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압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말기 요양의 고유 역할도 침식될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조력사에 대한 수요가 때로 “지옥”으로까지 묘사되는 요양의 실패를 의미한다며 내부의 성찰을 이끌기도 한다.

어떤 합의에서건 조력사는 반복될수록 “도덕적 저항감이 줄게 되고, 더 다양한 환자를 죽음을 원하는 환자로 간주하기 쉬워진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도 타당해 보인다. 이른바 ‘미끄러운 경사 길 효과’다.

1983년 교통사고로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스물다섯살 낸시 크루잔의 영양 공급관 제거를 부모가 요구했으나 병원이 거절했다. 1990년 연방대법원은 부모의 편을 들며 처음 ‘죽을 권리’의 판례를 확립했으나 저자의 잔상은 깊다. 이미 많은 미국인이 자기 권리로 간주하던 걸 그제야 판사들이 인정한 현실은 부조리하고 판결 뒤에야 장치를 뗀 뒤 12일에 걸쳐 “혀가 붓고 눈꺼풀은 닫힌 채로 말라” 죽어간 그녀에게 차라리 치명적 주사를 주입해야 했다는 반문.

현재 미국에선 오리건주에 이어 워싱턴·몬태나·버몬트·캘리포니아주 등 9개 주(워싱턴 D.C도 시행)에서 법명은 다르지만 조력사법을 시행 중이다. 1998년 외국인에게도 ‘안락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스위스에 이어, 2002년 안락사와 조력사를 합법화한 네덜란드·벨기에, 2016년 조력사를 받아들인 캐나다까지 ‘존엄사’는 존엄의 논리로 서서히 확대되는 중이다. 같은 논리로 조력사 금지법을 시행 중인 영국, 오리건주보다 주 차원(노던주의 말기질환관리법)에선 빨리 시행(1996년)했으나 정부 차원에서 이듬해 폐지한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사례는 ‘생애 마지막’의 ‘자결권’에 대한 중층의 질문들을 곱씹어 거듭 ‘존엄’을 묻게 한다.

저자는 죽음을 가까이 둔 이들에게 존엄에 대한 초월적 지혜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말 간단했다… (누군가는) 속옷에 똥을 싸거나 엉덩이를 닦아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 때까지만 삶이 존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썼다. 반지하에서 익사하지 않는 것만큼 어떤 존엄은 아주 선명하기도 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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