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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장강명, 불안과 공허 기원을 쫓아서 한국사회 ‘재수사’

등록 2022-08-19 05:00수정 2022-08-19 11:21

장강명 신작 장편 ‘재수사’
22년 전 살인사건 쫓는 형사들

살인범의 ‘신계몽주의’ 원고와 병행
“‘리얼리즘 노동문학’이 내 본령”
신작 장편 <재수사>를 내놓은 소설가 장강명.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던 11년 전에는 전업 작가가 되는 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문학이 월급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변을 밝혔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신작 장편 <재수사>를 내놓은 소설가 장강명.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던 11년 전에는 전업 작가가 되는 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문학이 월급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전업 작가의 길을 택한 변을 밝혔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lt;재수사&gt;. 장강명.
<재수사>. 장강명.

재수사 1, 2
장강명 지음 l 은행나무 l 각 권 1만6000원

장강명이 두 권짜리 신작 장편 <재수사>를 내놓았다. <우리의 소원은 전쟁> 이후 6년 만이다. 22년 전 서울 신촌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 사건을 다시 수사하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공격적인 느낌으로 아름다웠”던 여대생 민소림이 자신의 원룸 오피스텔에서 칼에 찔려 죽은 사건은 경찰 수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범인을 찾아내는 데 실패한 채 미제로 남았다. 이야기는 강력반 여형사 연지혜와 동료들이 당시 수사 기록을 재검토하고 누락된 부분을 채워 나가면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축으로 삼아 진행된다. 소설은 모두 100개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짝수 장이 형사들의 수사 과정을 담았다면 홀수 장은 범인이 남긴 원고로 되어 있다. “내가 살인자라는 사실이 내게 힘을 준다”거나 “반드시 두 번째 살인을 저질러야 한다”는 등의 대목에서 보듯 범인은 살인에 관해 남들과는 다른 관점을 지닌 인물이다. 이 원고에서 범인은 살인에 관한 남다른 견해뿐만 아니라 문명과 사회에 관한 독자적인 철학 역시 제시한다.

‘작가의 말’에서 밝힌바, 이 소설을 쓰면서 장강명은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현실적인 경찰 소설을 쓰자’는 것과 ‘2022년 한국 사회의 풍경을 담고, 그 기원을 쫓아 보자’는 것이 그것이다. 강력계 형사 여섯을 포함해 경찰 아홉 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소설은 형사들의 업무 방식과 직업관을 매우 사실적으로 담는 데에 성공했다. 가령 강력반 형사들이 정기적으로 ‘아이템 회의’를 열어 기획 수사 대상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든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피의자를 확인했을 때 그 피의자를 ‘새끼’라고 부른다는 등의 디테일이 흥미롭다.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작가는 “실제로 만나 본 형사들은 자부심과 사명감이 강하더라. 대체로 ‘나쁜 놈들 잡겠다’는 우직한 생각으로 일을 하는 분들이었고, ‘사건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수사는 예술이다’라는 말을 들으면서는 감동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재수사>를 읽는 독자들은 연지혜 형사와 동료들의 수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경찰의 업무 방식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시대 한국 사회의 풍경과 그 기원에 관해서라면, 작가는 그것을 불안과 공허 두 단어로 간추려 설명한다. 민소림을 비롯한 98학번 대학생들의 학창 시절과 그로부터 20여년 뒤 현재의 모습에서 그 세대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94학번이고 저희 때에도 학부제가 있긴 했지만, 저는 공대라서 그리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민소림이 다니던 인문 계열 학과들은 몽땅 인문학부로 통합되어서 선후배나 동기를 모르는 상황이 되었지요. 대리출석도 안 해 줄 정도로, 옆에 있는 친구를 경쟁자이자 적으로 여기게 만드는 풍토가 조성되었습니다. 그 무렵의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장편소설 &lt;재수사&gt;를 내놓은 작가 장강명.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한 인터뷰 말미에 최근 부인이 시작한 독서 플랫폼 ‘그믐’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장편소설 <재수사>를 내놓은 작가 장강명.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한 인터뷰 말미에 최근 부인이 시작한 독서 플랫폼 ‘그믐’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또 다른 문제인 공허는 2000년대 이후 대체로 우리 사회가 풍요로워진 뒤에 나타났다고 작가는 파악했다. “개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가치관의 문제가, 더 크게는 ‘우리 사회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가’ 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대두했지만, 두 차원 모두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 <재수사> 속 살인범은 그것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이 양자의 뿌리라 할 계몽주의의 실패라고 지적하고 ‘신계몽주의’라는 독자적인 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계몽주의에서는 인간에게 교육을 충분히 시키고 많은 자유를 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거대한 무언가를 희구하고 그 일부가 되기를 열망하는데, 계몽사상은 그 부분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명예와 의미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지요. 단순히 고통이 없으면 행복하다는 생각도 인간에 대한 얄팍한 이해라고 봅니다. 어떤 고통은 삶에서 꼭 필요하고, 그 고통을 통해서만 의미 같은 게 나올 수 있다는 데까지는 저도 살인범과 같은 생각이에요. 그러나 나중에 궤변으로 나아가는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죠.”

미모와 두뇌를 겸비한 피해자 민소림, 그리고 살인과 문명에 관해 독자적 관점을 피력하는 범인의 존재는 장강명의 등단작이자 2011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표백>을 떠올리게도 한다. 작가 역시 그런 판단에 동의하며, 그럼에도 “<표백>은 다음 세상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담았다면, <재수사>는 다음 세상을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로부터 더 나아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표백>에서 도스토옙스키 소설 <악령>이 연상되었다면, <재수사>에는 도스토옙스키의 다른 소설인 <백치>가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작가는 “<백치>보다는 역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인 <죄와 벌>을 더 많이 의식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 이후 더 묵직한 소설들을 쓰게 되었던 것처럼, 나 역시 <재수사> 이후 좀 더 묵직하고 진지한 문제의식을 지닌 소설을 쓰고 싶다”고도 말했다.

“한국문학에서 제 본령은 ‘리얼리즘 노동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의 민중문학과는 다릅니다. 지금의 노동 양상이 상호 착취와 자기 착취가 착종되어서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제 연작 소설집 <산 자들>에 대해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그 2권을 쓸 예정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인원을 감축해야 했던 여행사 얘기를 다룬 단편도 들어갈 거예요. 코로나 같은 질병을 한국 사회가 소화하는 방식이 비정규직과 약자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을 겁니다. <산 자들>은 2권으로 그치지 않고 5, 6, 7권이나 더 나아가 10권이 되도록, 죽을 때까지 계속 쓰고 싶어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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