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크 상페(1922~2022). 위키코먼스미디어.
<꼬마 니콜라>를 비롯해 관조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유머 넘치는 그림과 글로 전세계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프랑스 작가 겸 일러트스레이터 장자크 상페가 11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 고인의 전기를 쓴 작가이자 친구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는 “장자크 상페가 목요일 저녁 별장에서 아내 마르틴 고시오 상페와 가까운 친구들 곁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192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상페는 소년 시절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재즈 음악가들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난 때문에 14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나이를 속여 입대했다가 제대한 뒤 신문사에서 그림을 그리며 삽화가로 이력을 쌓았다. 1956년 작가이자 편집자인 르네 고시니와의 작업으로 벨기에 잡지 <르 미스티크>에 <꼬마 니콜라>를 연재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꼬마 니콜라>는 1959년 프랑스에서 단행본으로 나온 뒤 50년 넘게 45개국에서 번역되어 전세계에서 2000만부 이상 팔린 시리즈로 이어졌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영화도 여러 편 제작돼 한국에도 개봉됐다.
상페의 대표작 ‘꼬마 니콜라’의 프랑스어판 표지.
<꼬마 니콜라>에 이어 <얼굴 빨개지는 아이>(1969) <속 깊은 이성친구>(1991)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1995)등의 작품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대형 베스트셀러 <좀머씨 이야기>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한국에 번역된 책들만 100종에 가까울 정도로 생전에 많은 그림과 에세이집을 남겼다.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상페는 <뉴요커>의 표지를 수차례 장식하기도 했다.
맑은 수채화로 소심하고 곤란에 빠진 아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그려내는 상페였지만 작품에서는 감지하기 힘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2014년 국내 발간된 <상뻬의 어린 시절>에 수록된 프랑스 잡지 <텔레라마>와 한 인터뷰 내용을 보면, 가난했던 어린 시절 부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아버지가 다른 이복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상황에서 자랐다고 고백했다. “(거짓말을) 노상 입에 달고 살았어요. 친구들한테 가족끼리 보낸 유쾌한 저녁 시간을 자랑하기도 했지요. 실제로는 매일 지옥 같은 싸움판이었는데도 말이요.(…) 끔찍한 건 두 분이 집안 살림살이를 모두 부순다는 점이었어요. 두 분이 싸우면, 난 두 동생을 보호해야 할 뿐 아니라 어머니도 보호해야 했죠.” 상페는 2018년 ”니콜라 이야기는 내가 성장하면서 견뎌온 비참함을 다시금 되짚어보는 과정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페의 별세를 알린 <아에프페>(AFP) 통신은 11일 “상페가 작품에서 보여준 다정함은 그가 어린 시절에 겪은 비참함과 극명히 대조된다”며 “세상에 대해 흥미롭고 때로는 신랄한 진실을 조롱하지 않고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리마 압둘 말락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트위터 계정에서 그를 추모하며 “상페는 더는 이곳에 없지만 그의 작품은 영원하다”며 “다정함과 우아함, 장난스러움으로 그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고 썼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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