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멸하는 지구에서 살아간다는 것
대니얼 셰럴 지음, 허형은 옮김 l 창비 l 2만원 16세기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에는 유럽 플랑드르 지방의 정경이 그려진다. 털모자로 얼굴을 싸맨 사람들은 연못에서 얼음을 지친다. 둑길로 마차가 달리고, 앞치마 두른 이는 땔감을 이고 간다. 이 풍경을 굽어보는 언덕에선 한 무리 사냥꾼이 사냥개를 몰아 마을로 돌아간다. 미국의 기후운동가 대니얼 셰럴은 이 그림에서 기후 위기의 본질을 떠올린다. 기후변화를 마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화폭 속의 지독한 ‘무감각함’과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멜랑콜리아>에서 이 그림을 만났다. 영화에서는 그림이 정지화면으로 비춰지다 돌연 불에 그을린다. 썰매 타던 아이와 집들이 차례로 재가 된다. 하지만 그림 속 인물들은 불길이 자기한테 닥칠 때까지 “각자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페테르 브뤼헐의 그림 <눈 속의 사냥>(1565).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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