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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케이팝은 가장 지구적인 흑인음악이다

등록 2022-08-05 05:00수정 2022-08-05 11:04

‘케이팝’의 개념, 흐름, 세계화 이유 등
도발적 분석…미 조지메이슨대 앤더슨

“흑인음악 차용하되 의미 확장·창출”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
현진영에서 BTS까지, 그리고 그 너머
크리스털 앤더슨 지음, 심두보·민원정·정수경 옮김 l 눌민 l 3만원

책의 초입서부터 세 가지 지점에서 놀라게 된다.

한국 음악에 대한 학술·문화계 분석이 영어권에서 이처럼 많이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한 학자의 케이팝에 대한 애정과 흑인음악에 대한 더 큰 애정. 물론 그 신뢰들은 세세한 사례연구들 위에 서 있다.

이 모두를 관통하여 크리스털 앤더슨 교수(미국 조지메이슨대 아프리카계 미국학)가 노정한 책 제목은 <케이팝은 흑인음악이다>이다.

단정적이고 도발적인 표제에 심사가 불편해지는 독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일본 예능의 얼개나 자막 삽입 기능을 고스란히 베껴온 시절도 있었던 만큼,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현재 한국드라마가 미드(미국드라마)다, 일드(일본드라마)다 감히 말할 수 없는 독자성을 하루하루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혼종과 상호텍스트성(서로 다른 텍스트가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미가 생성 변화됨, 프랑스 기호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은 그 자체로서 문화의 본질이며 밑동이다.

그래서 기어코 불쾌해질라치면 이런 말들을 잠시 되짚어보자.

“우리는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케이팝을 만들었다.”(에스엠엔터테인먼트 설립자 이수만, 책 재인용)

“흑인음악이 기본이다. 하우스, 어번, 피비아르앤비(PBR&B) 등 여러 장르를 할 때도 흑인음악이 기본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하이브 이사회 의장 방시혁, 책 재인용)

‘아시안솔’이란 예명과 함께 미국 흑인음악에 대한 기호는 물론 ‘케이팝 필을 지닌 흑인음악’으로 레이블을 소개하기도 한 박진영(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 대표)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싸이의 2012년 11월18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폐막 공연은 자체로 기념비적이다. 당시 흑인 래퍼 MC(엠시) 해머와 함께 ‘강남스타일’을 연출했다. 이후 싸이는 “나는 20년 전에 엠시 해머의 안무를 연습했다”고 고백했다. 에이비시(ABC) 방송 화면 갈무리(유튜브)
싸이의 2012년 11월18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폐막 공연은 자체로 기념비적이다. 당시 흑인 래퍼 MC(엠시) 해머와 함께 ‘강남스타일’을 연출했다. 이후 싸이는 “나는 20년 전에 엠시 해머의 안무를 연습했다”고 고백했다. 에이비시(ABC) 방송 화면 갈무리(유튜브)

책 읽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될 만하다. 새삼 흑인음악이 케이팝에 미친 영향의 ‘장르공학적’ 분석(음악적 요소뿐 아니라, 안무·스타일링 등 뮤직비디오의 코드, 가수 발굴 시스템 등에서까지 포착된다)에 대한 이해를 넘어, 문화적 변방에서 거대한 혼종을 통해 하나의 지구적 장르를 창출한 의미의 감각. 더 나아가자면, 케이팝과 흑인음악의 거리를 측량해보는 일은 결국 대중문화 유통소비자들의 문화 다양·포용성의 깊이와 여파를 계량해보는 일이 되겠다.

실제 눈길 가는 지난 쟁점은 세계 음악, 특히 주류로서의 서구음악(인)이 흑인음악을 차용하고 소비해온 방식과 태도다. 대중음악과 흑인음악의 관계는 빅뱅과 지구의 그것처럼 힙합, 아르앤비, 솔(soul), 가스펠, 재즈, 댄스 등 뿌리 깊지만, 흑인계가 대중문화의 개척·생산자로서 유통·소비 단계에서 배제된다는 문화사적 비평은 적지 않다. 저자가 언급한 폴 시(C) 테일러 교수(밴더빌트대 철학과)는 이를 ‘엘비스 효과’(Elvis Effect)라 이른다. 그의 비평(1997)을 직접 보면, 이는 전통적으로 이뤄지던 흑인들의 문화 생산 과정에 백인들이 참여하며 불편한 감정을 야기하는 현상으로, 백인 사회의 관심·간섭·환호 따위가 없이 그간 저 홀로 수행되던 흑인들의 문화 생산 과정이 백인에 의해 ‘발견’되고 종내 훈련된 백인이 개척자이자 주류가 되는 구조에서 비롯한다. “(불편한 감정은) 흑인 전통에 참여하는 일부 비흑인 예술가들이 사회역사적 맥락과 의미를 도외시하는 순간에 드러난다”는 저자의 점잖은 서술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 상품에 대한 백인 공동체의 욕구가 역사적으로 인종차별적 궤적이었다는 점”이라는 테일러의 솔직한 분석에 기댄다.

케이팝은 바로 이러한 맥락의 복판에서 한국어로, 백인도 흑인도 아닌 한국인으로서 향유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2017년 11월20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공연장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케이팝 그룹 최초이자 아시아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공연자로 초청받았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방탄소년단(BTS)이 2017년 11월20일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공연장에서 열린 ‘2017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무대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은 케이팝 그룹 최초이자 아시아 뮤지션으로는 유일하게 공연자로 초청받았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공식 페이스북 갈무리

군부독재 직후 세계화를 경험하며 성장하던 1990년대부터 “아시아 대중문화가 모방만 한다”거나 “한국 음악산업 전체는 서구 혹은 일본 대중문화의 복사기”라는 당대의 무관심에 가까운 혹평이 언제부턴가 흑인음악의 전유에 대한 진정성 논쟁 등으로 정밀화한 건 고유한 장르로서 감당 중인 몫으로도 보인다.

“단순히 쿨하게 보이는 효과를 위해 특정한 요소를 원작에 대한 존경심 없이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저자가 인용한 비평, 2013), “흑인 연기가 자신들을 어느 정도 쿨하고 더 진정성 있게 만들어주고 대중에게 어필할 것이라는 생각은 체계화되어 있는 듯하다. 이는 다른 문화에 대해 일말의 존경심조차 표하지 않는 것이다”(2015) 같은 비판에 앤더슨 교수는 아르앤비의 곡 구성과 보컬 스타일 등을 차용하며 확장 창출하는 상호텍스트성 및 진정성 등을 여러 사례로 짚고, 케이팝을 “글로벌 아르앤비 전통의 한 지류”로 언명하기에 이른다. 그의 관점인바, 10대 아이돌뿐만 아니라 인디 음악, 힙합 등이 없이 케이팝은 구성되지 않고, 비평과 향유를 넘나드는 “초국가적 공동체를 대표”하는 디지털 기반의 팬덤 없이 케이팝은 지속되지 않는다.

혁오. 인디로 시작해 주류로 진입했다며 케이팝을 하나의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커다란 ‘우산’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제공
혁오. 인디로 시작해 주류로 진입했다며 케이팝을 하나의 장르가 아닌,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커다란 ‘우산’으로 바라볼 것을 권한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두루두루 아티스트 컴퍼니 제공

2009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첫 케이팝 여성 그룹인 원더걸스가 내세운 콘셉트는 1960년대 흑인 걸그룹의 복고풍 스타일과 유사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2009년 미국 시장에 진출한 첫 케이팝 여성 그룹인 원더걸스가 내세운 콘셉트는 1960년대 흑인 걸그룹의 복고풍 스타일과 유사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저자의 어떤 설명은 말하자면 ‘흑인음악 빅뱅론’처럼 읽히기도 한다. 미국 본위의 입장도 진하다. 하지만 흑인 학자의 ‘원조’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 비주류 음악이 흑백의 구도를 넘어, 사실상 최초의, 지구적 장르가 된 데 대한 지지가 저류에 일관되게 감지된다.

그 나라의 대표적 영화학교 중 한곳인 엘에이필름스쿨이 누리집에 소개하고 있는 ‘케이팝의 역사’를 보면, 1997년부터의 3세대(1세대는 HOT, 젝스키스, SES 이후, 2세대는 1999년 GOD 이후, 3세대는 2010년대 엑소, 비티에스, 블랙핑크 등)로 분류하되 3세대의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독특하다”고 명토 박는다. “솔직히 미국의 엔터테인먼트는 백인 중심의 단일 문화가 지배한다. 업계가 후원하는, 성공적 그룹의 대다수는 백인이다… 케이팝 아이돌은 상품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매우 재능 있고 스타일도 완벽하며 사회적 의식도 있고… 모든 세대는 비위를 맞추는 자신들만의 팝 스타들이 있지만, 미국에서 처음으로 그들은 백인이 아닌 한국인이다.”
크리스털 앤더슨 교수(미국 조지메이슨대 아프리카계 미국학과). 눌민 제공
크리스털 앤더슨 교수(미국 조지메이슨대 아프리카계 미국학과). 눌민 제공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의 존 버거 말대로라면 노래는 “어떤 부재 앞에서 불려진다.” 혼종 케이팝을 듣는 이들은 더 자부해도 되지 싶다. 아이돌의 칼군무나 외모 덕분으로만 세계 도처에서 불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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