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오비베어의 내부 풍경을 곰리 작가가 그렸다. 롤러코스터 제공
연대의 밥상
한없이 기꺼운 참견에 대하여
이종건 지음, 곰리 그림 l 롤러코스터 l 1만6000원
지난 4월21일 서울 을지로3가의 한 선술집에 대한 강제집행이 이뤄진 시간은 새벽 3시20분이었다. 철거 용역 70여명이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1980년 가게를 열었을 때부터 사용했을지도 모를 노포의 집기들은 물론 안을 지키던 가게 사장과 활동가 2명도 이날은 힘을 쓰지 못한 채 들춰졌다. 공포만큼이나 ‘허기’가 가득했을 시간.
노포는 더 일찍 철거될 뻔했다. 2020년 11월부터 다섯차례 강제집행이 시도됐지만 인근 상인과 활동가들, 그리고 단골손님들이 울력해 막았다. 그때마다 그들은 주전부리를, 밥을, 추억을 나눠 먹었다. 사장을 빼면 죄다 ‘외부세력’이다.
“있었다.”
도시학의 용언을 하나 꼽자면 “있었다”겠다. 서울 을지로엔 정부가 ‘백년가게’로 선정했던 위 을지오비베어가 있었다. 서촌에는 궁중족발이 있었다. 아현동에 포차들이, 옥바라지골목에 구본장여관이 있었다. 곱창가게 우장창창이 있었다. 강남 타워팰리스 맞은편엔 구룡마을도 있었다. 도시엔, 더 많은 것들이 그리고 또 있었다.
‘을지오비베어가 있었다’는 서술은 ‘노가리 골목이 있었다’는 서사와 다름없고, 이는 골목이 골목이 되기까지 숱한 도시 서민들의 자취와 시간의 응축이 있었다는 서사를 품는다. 아무렴 그 골목을 서울시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연유이리라.
지난 4월21일 새벽 서울 중구 을지로3가 노가리 골목에 위치한 노포 ‘을지오비(OB)베어’에 대한 강제집행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이는 강제철거에 맞서 합세한 이들이 자본의 말대로 단지 ‘외부세력’으로 치부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한데 그러든 말든 거듭 이들은 전날에도, 전전날에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강제철거에 가슴 졸이며 함께 허기를 채운다. 이윽고 철거민이 될 포차 사장이 팔던 대로 내놓은 잔치국수를 먹고, 철거 전의 노량진수산시장에선 아침 매운탕을 끓여 먹고, 궁중족발 농성장에선 철거 전의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사 온 석화를 목장갑 끼고서들 쪄 먹는다.
매번 처연한 철거는 강제집행을 경계하며 피곤해 잠든 이들의 코를 간지럽히며 기어코 깨웠던 수원통닭 몇 마리로, 밥에 반찬 삼아 먹던 마요네즈 두툼한 사라다로 감각되고, 끝내 마주한 어떤 죽음은, 그러니까 가령 재개발로 쫓겨나 2018년 12월 사흘을 굶다 한강에 뛰어든 서른일곱살 박준경은 그가 좋아했다던 그래서 동료들과 모란공원 여름볕 아래 나눠 먹은 빠다코코낫으로 감지된다.
지난 10년 도시 빈민이 내몰리는 현장이라면 응당 눈에 띄었던 옥바라지선교센터(기독교 도시운동단체) 사무국장 이종건은 이 풍경의 구조를 “기꺼운 참견”이라 이르고, 참견과 참견 사이 놓인 밥상을 한 끼 한 끼 책에 다시 차려낸다. 실상 이들로선 ‘있다’에서 ‘있었다’로 결국 나앉은 패배의 기록, 말하자면 ‘눈물의 밥상’이 될 법도 하지만 제목은 그렇지가 않다. “지칠 만하면 또 버틸 만한” 원리, 곧 <연대의 밥상>이다.
따라서 그의 농성 발언도 배고픈 자들이나 툭툭 건든다. “봄이면 도다리, 여름이면 민어, 가을이면 전어를 먹으러 오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제 겨울입니다. 제철 방어를 먹어야겠습니다.” 2018~19년 강제집행의 폭력성을 규탄하던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 편에서 했던 말이다. 쟁점을 물론 들춘다면 그는 “월세를 더 받기 위해 말짱히 장사하던 공간 철거하더니, 모두를 수용할 수도 없는 겉만 번지르르한 건물을 지어놓고 꾸역꾸역 들어가란다”고 맞설 것이다.
때때로 도시재생, 재개발, 현대화는 시비는커녕 긴불긴도 가리기 어렵다. 1960년대 학술 용어로 도입된 취지처럼 서구에선 긍정적 맥락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는 경우가 더 잦다. 뉴요커 사회학자가 4년간 신발 8켤레를 닳아가며 답사하여 완성한 <아무도 모르는 뉴욕>(윌리엄 B. 헬름라이히 지음, 글항아리, 2022년 6월)에서도 40년 뉴욕시의 주거·상업적 활기, 안전을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상당 찾는다. 이를 ‘철거 깡패’로만 내몬 장본이 한국의 건물주인 셈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한 골목과 동네, 나아가 도시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오갔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흔적은 뭘 어떻게 해도 숫자로 남지 않는다. 다만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숫자만 남아 그것을 소유한 이들의 몫만 주장되고 있을 뿐”인 한국적 자본.
곱창가게 우장창창이 건물주의 통보로 가게를 비운 뒤 푸드트럭으로 영업할 때를 곰리 작가가 그렸다. 롤러코스터 제공
많은 임대료를 내면서도 도시에 지분도 흔적도 없는 이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연대는 결국 서로의 삶에 참견하는 일이다. 당신의 고통이 나와 맞닿아 있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끼어드는 일이다… 인간이 서로에게 관여하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 밥을 먹는 행위일 것이다.”
이러한 연대가 편파적으로 보인다면 당초 운동장이 건물주에 기운 탓이다. 일찌감치 ‘도시권’으로 편평한 도시를 상상해온 이유다. 도시가 도시인 누구에게든 평등하고, 때문에 그 도시 구성원 누구든 그 도시에 대한 참여권을 갖는다는 논리(앙리 르페브르)다. 그때 도시는 소유되지 않는다, 전유된다.
전유하는 자들의 참견 덕에 임차인들을 더 보호하겠다며 상가 건물 임대차보호법이 개정 강화된 지 4년째다. 임차인이 건물주 향해 망치를 들어야 했던 궁중족발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도 반복되는 퇴거와 철거의 현장에 저자는 절망한다. “직업이 없어지면, 사람도 없어지면 좋겠다. 시장이 개발되어 사라지면, 사람도 없어지면 좋겠다. 철따라 공간도 사라지고 사람도 없어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그 빈자리에 사람이 남아 비명 지르는 불편한 장면 보지 않고 그렇게 함께 사라지면 좋겠다.” 몇 줄만 더 읽다 보면 안다. 절망은 결국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위한 오기라는 걸. 한 도시 사람끼리 “밥은 먹었냐” 묻기 위한 진솔한 수작이란 걸.
2020년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농성장 안에서 이종건 사무국장(가운데 안경을 쓴 이)과 활동가 등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박김형준, 롤러코스터 제공
대학 동아리로 도시빈민 지원활동을 시작했던 이종건 사무국장은 늘 지는 싸움 아닌가 묻는 <한겨레>에 말했다. “전형적 기준으론 그렇지만 우리가 지지 않았구나 확인하는 순간들이 쌓여요. 법이 바뀌고 그다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함께 보거나. 한 현장이 끝나면 당사자들에겐 트라우마일까 싶어 잘 연락하지 않는데 정작 이분들은 뉴스를 듣고 다른 현장에 찾아옵니다.” 소식을 듣고 전라도에서 왔다며 쭈뼛거리던 을지오비베어 어느 단골의 마음 같다. ‘있었다’는 그렇게 ‘있다’가 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