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의 문학과 삶
김규동기념사업회 지음 l 한길사 l 3만5000원 “늙으신/ 어머니를 내버리고/ 이남땅 나온 놈이/ 잘 되면 얼마나 잘되겠냐/ 40년 동안/ 38선이 막혀 못 돌아갔다는 건/ 변명이고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꾸짖는 사람이 있어야 했는데/ 지금껏 이런 높은 어른을 만나보지 못한 것이/ 한이다.” 일평생 호 없이 살다간 김규동 시인의 시 ‘형벌’이다. 기존 질서에 맞선 모더니즘의 선구자라 불린 시인 김기림이 경성고보 스승이고, 모더니스트 시인 박인환이 1950년대 함께 모더니즘을 선도한 ‘후반기’의 동인이다. 평양종합대학 재학 중인 1948년 스승 김기림을 찾아 홀로 월남한 이후 전위와 서정을 넘나든 그의 시 세계는 디아스포라의 걱센 각오에서였을지 모른다. 그는 박정희 정권 들어서부터 민주화투쟁에도 나선다. “한 백 년 동안 잠재울 작정으로 바위는 육박해왔다/…/ 뜻하지 않은 이별이 곤충의 일생을 어둡게 하였다”(‘내면의 기하학’)는 인식은 “누님/ 찾지 말아요/…/ 40년도 못 보고 헤어져 살았는데/…/ 통일되기 전에는/ 바람에 띄워서라도 찾지 말아요/ 울고 헤어지는 만남은 죽어도 못해요/…”(‘찾지 말아요’)의 정서와 닿고, 정보당국에 연행됐다 나온 뒤 “문학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은 안 했습니다”는 시 바깥에서의 표명과도 닿는다. 태가 달랐을 뿐 언어가 달라진 적 없다.
김규동 시인
김규동 시인이 직접 목각한 자신의 시 ‘죽여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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