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믿음에 대하여>를 발표한 박상영 작가. 조혜진(블라썸크리에이티브) 제공
지금 가장 사랑받는 작가군에서도 맨 앞줄에 놓이는 박상영(34) 소설가는 요즘 무척 바쁘다. 전작 <1차원이 되고 싶어>를 낸 지 만 1년이 안 된 시점에 연작소설집 <믿음에 대하여>(문학동네)을 출간하고, 장편소설 준비에 들어갔으며, 그동안 써온 여행 산문을 책으로 묶는 작업이 진행 중인 동시에 작품들의 드라마화, 영화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올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오른 뒤 판권을 사간 국가가 두배로 껑충 뛰었다. 이 여파로 국외 여러 나라에서 진행될 북토크가 여러 건 잡혀 시간을 쪼개 영어공부도 하고 있다. 전통적인 종이책 독자가 아닌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과의 협업도 모색 중이다.
이런 창작 외 작업들을 원활히 하기 위해 지난 5월 창작자 에이전시인 블라썸크리에이티브와 전속 계약을 맺기도 했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한 카페에서 따끈따끈한 신작 <믿음에 대하여>를 들고 박상영 작가와 만났다.
―부커상 후보 지명 이후 달라진 것들이 있나?
“해외 판권이 많이 팔렸다. 그동안 팔렸던 15개국에서 순식간에 30개국이 됐다. 그중에는 남미 등 내가 안 가본 나라도 많은데 그 나라 사람들이 내 책을 읽는다는 게 신기하다. 작가로서 꿈꿨던 일이지만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북토크 등 내년에 해외일정이 많아져서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전작의 인물들이 세상에 부딪히고 깨진다면 <믿음에 대하여>의 등장인물들은 마모되는 느낌이다. 직장인으로, 자영업자로 책임질 게 많아진 30대들이다.
“전작이 젊은이들의 감정을 중심에 둔 얘기들이었다면 지금은 조금 바뀌었다. 나도 이제 30대 중반이고, 사회생활 연차도 10년 정도 됐다. 그런 변화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측면도 있고 팬데믹 등을 겪으며 세상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도 했다.
―<믿음에 대하여>의 첫 수록작 ‘요즘 애들’은 등장인물이 직장생활에 첫발을 내디디며 겪는 이야기들로 무례하고 억압적인 상사들의 모습이 그려진다면 ‘우리가 되는 순간’에서는 같은 인물이 팀을 이끄는 중간관리자가 되어 선배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25살이 끝날 무렵 취직해서 7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일을 시작한 친구들은 이제 직장에서 중간 계급이 되어 가고, 그래서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초년생 때와는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균형감 같은 걸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나쁜 상사, 갑질하는 상사, 이렇게 단순화해서 이야기하지만 100명에게는 100개의 스토리가 담겨있지 않나. 작가로서 총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 수록작 4편 중 2편에서 등장인물들이 집을 사는 등 부동산 이야기가 상세히 나오는 게 인상적이다.
“일단은 한국사회가 부동산으로 추동되어온 사회다. 그래서 <1차원이 되고 싶어>에서도 아파트 재개발 문제를 전면에 가져오기도 했다. 그런데 3~4년 전부터는 집값 폭등, 패닉 바잉, ‘영끌’ 등이 30대에게 가장 큰 화두가 됐다. 친구들 몇 명만 모이면 어디 집값이 얼마가 올랐더라,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찍 결혼한 친구들은 일찌감치 ‘영끌’해서 산 집값이 뛰면서 같은 출발선에 섰던 친구들과는 십억 이상의 자산 차이가 나기도 하더라. 너무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 포함해 모두가 쉼 없이 일하면서 살았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열심히 일하는 사회인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작품들에 아울러 더 전면으로 나왔다.
“작년에 한달 가까이 카페도 닫고 헬스장 문도 닫은 적이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교류가 많지 않은데다 작업할 때 카페에 가고 운동 가는 게 유일한 바깥 활동인데 이게 다 안되니까 정말 미쳐버릴 거 같았다. 너무 외로웠고 괴로웠다. 이것에 대해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책도 코로나에 대한 관심이 식기 전에 ‘현재형’으로 읽히길 바라서 좀 서둘러냈다. <믿음에 대하여>는 300장 넘는 분량을 한달 만에 쓰느라고 진짜 죽을 뻔했다. 완전히 피고름을 짰다(웃음).”
―<믿음에 대하여>의 화자는 코로나로 쫄딱 망한 이태원 식당 주인 이야기다.
“요즘 이태원에 가보면 작은 가게들은 거의 다 문 닫고 엄청 큰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더라. 대기업이나 돈 많은 건물주들이 싼값에 매입해서 새로 짓는다고 하더라.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상공인이 받는 피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지만 나는 그 스펙트럼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인간 감정에 대해 쓰고 싶었다.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보통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생존 자체가 사회적 장벽에 가로막혔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이들뿐 아니라 비교적 안정된 직장인들도 코로나 초기에 사내 ‘1호 확진자’가 되면 안 된다, 낙인 찍힌다, 이런 두려움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낙인찍기’가 횡행했다.
“나도 너무 무서웠다. 그때 <한국방송>(KBS) 교양 프로그램 녹화로 매주 방송국으로 출근했는데 만약 확진되면 프로그램 녹화도 멈추고, 당장 생계수단이 줄어서 생존의 위기를 겪을 수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 또 동선이 모두 공개되면 내 이름이 나오지 않아도 알만한 사람은 다 나인 줄 알 텐데 혹시나 식당이나 술집에서 걸렸다면 그야말로 낙인 찍히게 되는 거 아닌가. 겁이 나서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도 식당에 안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열흘 넘게 말을 단 한마디도 안 하게 되더라. ‘내가 견고하다고 믿은 내 삶이 조건들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또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사람들이 사회라는 구조 속에서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게 됐다.”
―소설 창작뿐 아니라 방송활동도 활발히 하고 최근에는 드라마화 작업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창작 외 활동은 어떤 의미인가?
“제 작품의 영상 작업에 요즘 참여하고 있다. 계약상 이 부분에 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못 하는 건 양해해달라. 요즘 오티티(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등 다양한 플랫폼이 부상하면서 판권 문의가 정말 많아지긴 했다. 예술 장르간 경계가 없어지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통로 중 하나로 문학이라는 매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나 역시 창작자이자 생산자로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 독자들의 니즈에 맞는 여러 가지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
―돈 많이 벌었겠다(웃음).
“아직 돈은 많이 못 벌었고, 이제 벌어야지(웃음). 방송출연은 일단 재밌고, 오티티 플랫폼 왓챠의 <조인 마이 테이블>처럼 꼭 있었으면 하는 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안이 오면 참여하고 싶다. 지상파나 케이블뿐 아니라 유튜브 콘텐츠 출연 등 활동 무대에 제약을 두지 않으려고 한다. 기본적인 내 정체성은 크리에이터에 가까운 것 같다. 현대백화점이나 마켓컬리, 배달의민족에서 소설 작품을 소개하는 시도를 했던 것처럼 책을 많이 안 읽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이가 문학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신작 <믿음에 대하여>를 발표한 박상영 작가. 최모레(블라썸크리에이티브 제공)
―이 와중에 월드투어(북투어) 준비도 하고 영어 공부까지, 대단하다.
“저는 야망이 큽니다. 제 질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큰 웃음). 블라썸크리에이티브와 계약을 하게 된 이유도 다양한 플랫폼과의 협업 등 창작 외 일에서 나 혼자선 역부족을 느껴서다. 직접 사업자로 나서 셀프 마케팅을 하고 상대방에게 내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하면서 딜(거래)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광고회사에서 일할 때는 이런 일이 내 전공이었는데도 내 작품에 대해서는 정말 못하겠더라.”
―크리에이터 박상영에서 ‘문학’이란?
“나의 본진 같은 것.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나의 본류,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장르는 문학이다. 방송 같은 외부활동도 문학이 더 잘 유통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을 즐기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깔고 하는, 문학인으로서의 활동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