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규 소장이 지난해 성평등 관점을 반영해 현충원이 새로 교체한 이은숙·이회영 독립운동가 부부 묘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동작 역사 이야기꾼’.
2013년 서울 동작구에 동작역사문화연구소(이하 연구소)를 세워 9년 동안 이끌어온 김학규(57) 소장을 부르는 말이다. 서울대 국사학과 84학번인 그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다 구속 고초를 겪었고 사회에 나와서는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활동을 했다. 학생운동을 같이한 고 박종철 열사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2006년부터 11년 동안 맡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지역에 주목한 그는 대학 전공인 역사로 이웃과 소통하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연구소를 세우고 동시에 동작구 공동체라디오 <동작에프엠> 프로그램인 ‘낭만과 전설의 동작구’에 나와 자신이 발굴한 동작의 역사와 전설을 이웃에게 들려주었다. 그는 올해로 10년째 출연 중인 이 방송 내용을 토대로 2018년에 동작의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역사를 구석구석 살핀 책 <우리동네 위대한 유산과 만나는 동작민주올레>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엔 동작구에 있는 한국의 대표 국립묘지 국립현충원을 다룬 책 <현충원 역사산책>(섬앤섬)도 출간했다. 지난 18일 현충원에서 김 소장을 만났다.
“2013년부터 해마다 20차례 정도 지역 학생이나 주민들과 함께 현충원을 탐방했어요. 책이 나오고는 답사 요청이 늘어 요즘은 더 자주 찾아요.”
그는 책에 현충원 탐방길을 독립운동가, 친일파, 여성, 4·3, 5월, 대통령, 평화통일 등 7개로 나누고 각각 안장 인물과 그 사연을 담았다. 독립운동가 길에서는 의병장 이인영과 신돌석의 묘는 있는데 왜 전봉준과 같은 동학농민군 지도자는 없는지 짚었고 친일파 길에서는 정부가 2004년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공식 발표했음에도 그때보다 오히려 현충원에 묻힌 친일반민족행위자가 2명 더 늘어난 현실을 개탄한다. 제주 4·3항쟁 70년인 2018년에 만들었다는 4·3길에선 4·3학살에 책임이 있는 군·경 인사 중 현충원에 묻힌 이들의 친일 행적을 주로 파고들었다. 대통령 길은 묘소 크기만 1100평으로 다른 대통령들과 견줘도 월등히 큰 박정희 전 대통령 묘가 조성 당시부터 국가원수 묘를 8평으로 규정한 국립묘지령을 어겼음을 지적하고 있다.
왜 따로 길을 만들었냐고 하자 그는 “처음에는 현충원을 다 보자는 생각으로 다녔는데 너무 넓어 사람들이 쉽게 지쳤다. 그래서 2015년부터 주제별 코스를 만들었다”고 답했다. “초기에 독립운동가나 대통령 길을 만들었고 4·3이나 여성, 평화통일은 나중에 만들었죠.” 여성 길을 만든 것을 두고는 “현충원을 같이 찾은 지역 여성들이 ‘왜 현충원은 남성만 있냐, 애국이 남성의 전유물이냐’고 항변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지난해 교체 전 독립운동가 이은숙·이회영 부부 묘비.
이은숙·이회영 새 묘비 뒷면에는 부인 이력도 함께 실었다.
김 소장은 <현충원 역사산책>이 나온 뒤 독립운동가 민필호 묘비도 서훈을 받은 부인이 배위로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 9년의 탐방은 현충원의 변화로도 이어졌다. 그와 연구소가 광주항쟁 때 사망한 계엄군 22명 묘비에 적힌 ‘전사’를 ‘순직’으로 바꿔야 한다고 2018년부터 캠페인을 벌였고 현충원은 2년 뒤 이를 받아들여 묘비를 교체했다. “전사 표기는 광주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거잖아요. 정보공개 청구 등 백방으로 노력해 뜻을 이뤘죠.”
지난해 3월 김 대표 표현대로 “현충원의 혁명적인 변화” 뒤에도 그가 있었다. 그가 전수 조사로 독립운동가 묘비 15기에 부인이 뒤늦게 서훈을 받았음에도 남편 이름 옆에, 같이 묻혔다는 뜻으로 작은 글씨로 “배위 ‘부인 이름’ 합장”이라고만 되어 있음을 밝히고 이를 언론에 공개하자 현충원은 작년 3월 14기를 같은 크기로 부부 이름을 나란히 쓴 묘비로 바꿨다.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과 김마리아 부부만 빼고 다 교체되었더군요. 현충원을 보면 국가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독립운동가도 예외가 아니었죠. 이런 상황에서 묘비를 성평등 관점으로 바꾼 것은 혁명적 변화이죠.”
학생·노동운동, 진보정당 활동 하다
2013년부터 역사로 동네이웃과 소통
동작 독립·민주운동사 살핀 책 이어
최근 ‘현충원 7개 길’ 소개하는 책도
지난해 현충원 ‘성평등 변화’ 이끌기도
“지역사 연구, 지방자치 활성화 도움”
사실 그는 89년부터 동작구 주민이지만 오랫동안 현충원에는 관심이 없었단다. “군사주의와 반공주의의 상징이라고만 생각해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았어요. 현충원은 군인묘지로 출발해 관할도 국방부이죠. 그러다 2005년에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장으로 방북했을 때 생각이 바뀌었죠. 고려호텔에서 티브이를 보는 데 애국열사릉과 혁명열사릉을 반복적으로 틀어주더군요. 그때 새삼 ‘우리는 어떤가?’ 흥미가 생겼죠.”
그는 현충원이 반공 군사주의 상징에서 평화통일의 상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대표 국립묘지인 현충원은 국가의 지향과도 결합해야 합니다. 분단과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극복한다는 견지에서 평화 영웅이 강조되면 좋겠어요. 관할도 보훈처로 바꿔야죠. 현충원에는 군인 외에 경찰이나 의사상자도 있어요. 이 모두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기관이 보훈처입니다. 보훈처는 서훈 심사 책임 기관이라 전문성도 있어요. 제가 여성 독립운동가 문제로 현충원과 소통해보니 이해도가 너무 떨어져요.” 그는 현충원이 친일파 신분 세탁의 장으로 활용되는 점도 우려했다. “일본 강점기에 일신의 영달을 위해 만주로 간 것을 마치 독립운동을 위해 한 것처럼 ‘망명했다’고 적었더군요. 일본 육사를 나와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던 한 분 묘비에는 일제 때 행적을 두고 ‘군사학을 연마했다’라고만 되어 있어요.”
앞으로 동작의 조선시대 민중사도 정리해볼 생각이라는 김 대표는 서울 25개구 모두에서 지역사 연구가 활성화하도록 기여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최근 한말 경기 시흥 지역에 속한 동작, 금천, 관악, 구로, 영등포구 지역 연구자 및 활동가들과 함께 1904년 2차 시흥농민항쟁 공부를 시작했다. 일제의 이권 침탈에 맞서 일어난 이 항쟁 연구를 위해 5개구 주민이 모인 것이다. “항쟁 120년인 내후년에는 심포지엄도 하고 연구 결과를 토대로 독립유공자 신청도 하려고요.”
충남 당진이 고향인 그는 동작 지역사 연구의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지역사를 잘 정리하면 주민들이 동네에 자부심이 생겨 지방자치도 활성화할 수 있어요. 지금과 같은 중앙 중심 정치로는 큰 변화를 끌어내기 힘들어요. 지방자치 활성화를 기반으로 더 큰 변화도 준비할 수 있죠. 제 방송이나 글로 주민들이 동작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알게 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김 대표는 <우리동네 위대한 유산과 만나는 동작민주올레>를 대폭 보완해 곧 <동작구 근현대 역사산책>(전 2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에게 한국 역사에서 동작은 어떤 곳이냐고 묻자 “역사 자원이 풍부한 곳”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선 시대부터 교통 요지였죠. 노량진 나루터는 삼남 지방과 통하는 곳이었고 1899년 개통한 경인선 철도도 노량진에서 출발했죠. 한강 첫 다리가 생긴 곳도 여기죠. 이렇게 교통이 통하는 곳이라 주민들의 정치 의식이 발달했어요. 시흥농민봉기도 그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이 한강 다리 근처를 회합 장소로 자주 이용했어요. 이관술 박진홍이 비밀회합한 곳도 노량진 전차 종점이었죠. 독립운동가나 사회주의자들 비밀 아지트도 꽤 많아요.”
그는 인터뷰 끝에 지역 공무원들의 지역사에 대한 둔감함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동작구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모두 4억원을 들여 <디지털동작문화대전>을 만들어 지난 4월에 공개했는데 일부 내용이 사실과 달라 최근 폐쇄됐어요. 여기에 동작 지역 독립운동가도 심훈 작가 한 분만 들어갔더군요. 제가 찾은 분만 200명이 넘는데요. 엉터리로 된 동작구 연혁을 고치는 데도 3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연혁이 1980년에 떨어져 나온 영등포구 중심으로 되어 있길래 고치자고 제안했는데 공무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더군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