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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정의’론 치유할 수 없는, 가장 개인적이며 지구적인 상처

등록 2022-07-15 05:00수정 2022-07-15 09:35

인류·지리·여성학자 등 10년간 ‘공감대화’ 기획
이주생애 복원-상처 인식-치유…연구방법론으로
‘회복적 정의’의 학술 현장 “대화는 치유의 도구”
원시 동굴벽화에선 아프리카에서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우분투’(공생)의 관념이 곧잘 발견된다. 동굴벽화의 이미지들을 차용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원시 동굴벽화에선 아프리카에서 오래전부터 강조해온 ‘우분투’(공생)의 관념이 곧잘 발견된다. 동굴벽화의 이미지들을 차용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공감대화
존중과 치유로 가는 한 사람, 한 시간의 이야기
정병호 엮음, 이향규·김기영·조일동·문현아·최은영·이해응·윤은정 지음 l 푸른숲 l 1만8000원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아래 살인과 고문, 일상의 붕괴가 자행되던 과거를 딛고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한 때가 1995년. ‘치유’가 응보로 가능할라치면 기관의 이름은 정의위원회나 사법위가 되었을 것이다.

옥살이는 물론 정부 테러에 제 눈과 팔 하나씩을 잃은 인권운동가로 1994~2009년 남아공 헌법재판관을 역임했던 알비 삭스에게 ‘정의’가 단순명료할 리 없다. 진실화해위 설립 단계에 역할을 하며, 그럼에도 내린 소결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도 자료도 정보도 아니었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희생자의 눈물을 기억하는 것… 가해자들이 그들의 잔혹행위를 적어도 일정 부분은 인정하고 사면을 요청하면서 흘린 눈물을 기억하는 것이었다.”(<블루드레스>, 2012)

이 가치를 아프리카에선 오래전부터 ‘우분투’(공동체 공생)로 말해왔고, 현대 서구는 ‘회복적 정의’라 이른다. ‘범죄나 잘못을 법 너머 관계를 침해한 행위로 보고, 이를 회복하려는 공동체적 정의’라는 설명(이재영 한국회복적정의협회 이사장)에서 알 수 있듯, 여기저기 남발되는 ‘정의’가 때로 사납고, 지고지순의 표지에 또다른 수식이 요구되는 까닭은, 지금의 정의가 ‘인과’를 좇다 놓친 ‘관계’ 때문이겠다. 존엄들의 공생.

<공감대화>는 ‘관계 회복’을 위한 방도로서 지난 10년 동안 ‘대화’ 모임을 기획해 이야기를 길러내고, 이를 연구방법론으로까지 심화시킨 결과물이다. 문화인류학자 정병호가 중심이 됐다. 거창하긴커녕 심지어 상투적인 책 제목은 지금 우리 사회가 과거와 달리 맞닥뜨리는 거대하지 않은 폭력, 희미한 폭력, 그로 인한 거창하지 않은 상처, 상투적인 상처의 특성을 에두르는 듯하다. 문제는 도처에 있다는 사실이며 그래서 상투적일지언정 상처는 자명하고, 상처를 감당하는 어떤 개인도 상투적일 수 없다는 데 있다. 알비를 거듭 소환하자면, 피해사실의 “지식”(정보)은 넘쳐나지만, “인식”은 절대 부족하다. 현상의 존재 사실을 넘어선 “사실의 감정적·사회적 중요성”을 수용하는 태도 말이다. 그 결핍의 텍스트로 연구진이 특히 주목하는 건 이산과 이주의 한인 사회다.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으로 관계의 침탈을 요구받는, 깊고 길고 강파른 상처들.

단일민족, 단일국가가 신화처럼 얘기되지만 “국가-국민-국적이 단일한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이 나라의 진실을 감추긴 어렵다. 한과 비애의 유전자는 조국이 떠밀어온 이산의 역사에서 비롯했대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 ‘출신’은 피아의 매서운 식별띠로 작동한다. 너와 나를 구별-차별하는 편리한 기준이라, 더더욱 생존 이주가 필수가 되어버린 <대이동의 시대>(파라그 카나 지음, 비즈니스맵, 2022)에, 그로 인한 갈등과 상처는 실로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태어난 이한수. 엘리트 지식인이던 아버지가 스스로 택한 나라에서 식민지 출신의 외국인으로 취급받으며 무능한 폭력 가장으로 전락한 탓인지 자식의 정체성도 정연하지 않다. “고국에 대한 존경심”이 전무하면서도, 한글 이름을 달고 일본 공립학교에 다니며 “칼, 무기를 안 들고 맨주먹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똑같”다는 일상의 차별을 감당한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조작 사건의 여파로 1990년대 초반 한국 대학원 입학이 거부된 그는 캐나다·미국 유학을 택하고, 영어와 일본어에 능숙한 그를 미국 취업박람회에서 한국 기업이 선택한다. 비로소 한국 국적자가 되지만 주민번호는 주어지지 않아 2년 전까지만 해도 유아 복지혜택(출산·보육수당) 등에서 무국적자 취급을 받았다.

이한수는 ‘그래도 잘사는 재일동포가 부럽다’는 재중동포들을 그래서 부러워한다. 그들은 중국서도, 한국서도 ‘한민족’으로 산다. 이는 한족에게 “가오리방쯔”(‘고려몽둥이’라는 뜻의 비하)라고, 한국으로 결혼이주한 뒤는 시댁과 남편한테 “조선족”이라고 무시받는다는 재중동포 김미숙(1970년대 초)의 개인사와 병치된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까지 눈물로 사태를 ‘인식’하고 ‘기억’하게 하는 현장이 되어왔다. 제10차 이산가족상봉 2차 마지막날인 2004년 7월16일 오후 김정숙휴양소에서 남측 김경옥(74·오른쪽)씨가 북측 동생 김정옥(68)의 손을 잡고 석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이들까지 눈물로 사태를 ‘인식’하고 ‘기억’하게 하는 현장이 되어왔다. 제10차 이산가족상봉 2차 마지막날인 2004년 7월16일 오후 김정숙휴양소에서 남측 김경옥(74·오른쪽)씨가 북측 동생 김정옥(68)의 손을 잡고 석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이 ‘알 만한’ 디아스포라의 생애는 발화하면서 ‘인식’되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벌써 14년을 살았는데, ‘어데서 왔느냐’ 말은 있지만 ‘어떻게 살았느냐’ 물어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일본 영토였던 사할린으로 부모가 이주한 뒤 태어난 윤기준(1935년생)의 얘기다. 그의 국적은 네 개였다. 다수의 이름과 국적을 지닌 이가 윤기준 하나일 리 없고, 그런데도 출신만 묻는 이들은 차고 넘쳐 “한국인과 한반도만을 일체화하고” “이외의 존재를 지워버”린다.

공명도 발화 후나 가능해진다. 8명의 고등학생(탈북청소년 2명, 다문화 2명 등)이 한데 모였다. 자기소개 때도 다문화 기색이 없던 여학생이 남의 얘기 중 돌연 눈물을 쏟았다. 혁진은 통일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밭일하는 북한 사람을 보았다고, 시골 사람들과 거의 같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중등 시절 탈북자로 얕볼까 부러 ‘날라리’ 행세도 했다던 고3 초희는 울며 고백했다. “…지금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 기억이 하나도 안 나거든요. 몇년 전까지만 해도… 정말 보고 싶으면 꿈에도 나왔어요… 기억이 안 나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내 할머니, 할아버지 얼굴이랑 겹쳐 보이는 것 같고 그래서 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혁진이가 봤다길래… 가족이 다 거기에 계시니까.”

급히 탈출하다 아버지 사진 한 장 못 챙겼다는 윤정의 눈물은 물론, 아버지가 필리핀 여성과 재혼하며 다문화 청소년이 되었으나 “나는 너희들 키우려고 네 아버지랑 결혼한 게 아니다”는 말을 듣는 외고생 준형도 턱관절이 불거지게 참는 울음은, 독일 파견간호사로 한국을 떠나던 날 “너무 울어서 공항직원이 이 아가씨가 뭐 죽으러 가나” 했다고 회고하는 전전세대(전희숙, 1943년생)의 것과 다를 바 없다.
2014년 2월 이후 1년8개월 만에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015년 10월2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 손권근 할아버지가 작별상봉을 하며 울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2014년 2월 이후 1년8개월 만에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015년 10월22일 오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북쪽 손권근 할아버지가 작별상봉을 하며 울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상처는 발화하면서 자유로워지고, 연결되어 단련되는 모양이다. 민간인 학살피해 유족과 민간인 학살 군인의 딸(탈북민), 인민군 출신 탈북민(1938년생)과 국군 참전용사(1930년생)가 만나 빚는 풍경처럼. 대화는 대화를 읽고 보는 이들에게도 들려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채널이 끊긴다면, 기어코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애도의 비용을 청구해 올 것이 바로 이산과 이주다. 뒤늦게 한국 사회가 기관을 만들어, 더더욱 정의의 심판과 처벌은 어려울 것이므로, 그저 ‘공감위원회’라 이름할 것인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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