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탄광도시에서 카지노도시로 변화
아이가 본 투기와 탐욕의 몰락서사
비극적 세계 속 생명력에 헌사
탄광도시에서 카지노도시로 변화
아이가 본 투기와 탐욕의 몰락서사
비극적 세계 속 생명력에 헌사

한겨레 문학상 강성봉 작가.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강성봉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3800원 제2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제목인 ‘카지노 베이비’는 실화에 기반한 작명이다. 작가가 어린 시절 몇 년 동안 살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종종 머물렀던 지역, 소설 속에서는 ‘지음’으로 나오지만 독자들은 강원랜드가 있는 강원도 정선 사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지역에서 도박중독자 커플에게 태어나 호텔방을 전전하며 자라던 아기 이야기다. 작가가 관련 커뮤니티에서 ‘카지노 베이비 탄생 사연’이라는 글을 주요 모티브로 가져왔음을 밝힌(‘작가의 말’) ‘카지노 베이비’는 소설에서 카지노 호텔방에 버려져 근처 전당포에서 자란 아이다. ‘나’로 등장하는 작품의 화자이며, 전당포 주인인 할머니와 할머니의 딸, 즉 나를 키운 엄마가 꼭꼭 숨겨온 출생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열살 언저리의 나이지만 출생 기록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나’는 전당포 위층 집에서 할머니와 엄마, 언젠가부터 밑도끝도 없이 “지음이 흔들린다! 랜드가 무너진다!”를 외치고 다니는 삼촌과 함께 산다. 지음은 산골 농촌에서 탄광 도시로, 지금은 카지노 도시로 변모한 이들의 터전이다. 랜드는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돈과 인생을 저당 잡히는 카지노가 있는 곳. “농사를 지을 때만 해도 순우리말 이름이 더 많았는데 탄광이 들어서자 한자 이름이 더 많아졌고, 랜드가 들어서고 나서는 영어 이름으로 불리”는 지음은 읍내인 이스트지저스와 랜드가 있는 웨스트부다스로 나뉜다.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슬립시티에는 랜드에서 현금을 모두 털린 이들이 시계나 금붙이, 자동차나 택시기사 면허증을 맡기러 오는 전당포 거리와 허름한 모텔촌, 그리고 노숙자가 된 한때의 랜드 방문객들이 서성거리는 ‘쪽박공원’이 있다. 화려한 분수가 물을 내뿜고 매일 밤 색색 전구가 반짝거리는 랜드와 랜드 없이 살아갈 수 없게 된 쇠락한 읍내, 양극단을 위태롭게 연결하는 슬립시티로 구성된, 번들거리면서 황량한 도시 지음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도서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엄마를 따라가 시간을 보내는 ‘나’는 “어른들 이마에 새겨진 작고 검은 흉터를 읽는 게” 일이다. 젊은 시절 탄광 노동자였던 남편을 잃고 지독하게 살아온 할머니와 도박으로 파산한 뒤 정신을 놓은 삼촌, 현실감각 없이 위축돼 있는 엄마뿐 아니라 맡겨놓은 돌 팔찌를 찾을 돈이 없어 전당포에서 한숨만 쉬다 나가는 벙거지 아저씨도, 엄마에게 연정을 품은 스피드전당포 용사장님도, 지음의 모든 이들이 크고 작은 흉터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소설은 이처럼 아이의 눈으로 보는 이상한 현실과 아이의 머릿속에 추상화처럼 남아 있는 랜드와 친부모의 기억, 이것이 뒤섞여 펼쳐지는 상상을 넘나들며 이어진다. 자주색 가죽점퍼를 입은 남자는 아기였던 자신을 호텔방에 버려두고 도박하러 갔던 아버지의 눈빛과 겹쳐지고 읍내 도로가 패인 구멍은 “랜드가 무너”지는 악몽으로 반복되며 불길한 복선들은 파국의 현실로 재현된다. 작가가 특별히 공들여 빚은 인물로 ‘나’, 동하늘을 키운 전당포 주인 할머니가 있다. 젊은 시절 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듯 바닷가 고향을 떠나 지음으로 온 할머니의 삶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의 축약판이다. 함께 도망쳐 살림을 차린 남편은 탄광 노동자가 돼 책임 있는 가장으로 살았지만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에 문제제기를 했다가 비참한 말로를 맞는다. 남편이 사고를 당한 뒤 어린 남매를 키우기 위해 식당과 공사장 밥장사를 전전하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사람 숨값”으로 받은 29만원으로 읍내에 다방을 차렸다. “TV만 켜면 ‘코리아 세울’을 외치는 흰 머리 남자가 나오던 시절” 할머니는 다방 이름을 ‘올림픽 다방’으로 짓고 큰 돈을 모았다. 하지만 탄광산업이 쇠락하면서 다방도 망하고 할머니는 카지노 도시로 변모한 이곳에 ‘월드컵 전당포’를 연다. 식당 노동자에서 다방 마담으로, 돈 빌려주는 일수 아줌마와 전당포 주인으로 갈아타며 할머니는 개발과 투기, 탐욕이라는 자본주의의 소용돌이에서 “일수 장부”라는 구명줄을 붙들고 살아남았다. 탐욕의 희생자처럼 보일 수 있는 인물이지만 작가는 할머니처럼 살아남아 “끈질기게 제 길을 찾아 나아가는 생명력”(작가의 말)을 가진 이들에게 애정을 담는다. 할머니는 카지노 건설 찬성과 반대를 오가며 시위하는 사람들을 향해 “잔뗑이로 반대해서 들고일난 게 아니래니. 시늉만 내다가 보상금이나 챙길라는 수작이지”라고 말하는 냉정한 현실론자에 ‘현금론자’다. 하지만 오갈 데 없는 아이인 ‘나’를 거둬, 자신의 성씨를 물려주고, 끝내는 제 목숨을 던져 사고를 당한 ‘나’를 살려낸다. 그리고 할머니가 준비해놓은 미래 덕분에 엄마, 삼촌과 나는 카지노가 무너진 폐허 이후의 지음에서 다시 살아나갈 희망을 얻는다. “예고된 끝을 향해 맥없이 망해가는 세계 한가운데서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이들”(양경언 문학평론가)에게 보내는 작가의 헌사다. 작가는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주식과 부동산, 비트코인 투자 광풍이 휘몰아치던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이 작품을 썼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한쪽에서는 황폐한 지음 읍내처럼 몰락의 기운이 퍼져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수십배, 수백배 수익 사례가 도시전설로 떠돌며 ‘카지노 자본주의’가 질주하는, 새로운 극단의 시대가 가져올 파국이 징후적으로 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 할머니가 남겨놓은 수수께끼와 같은 땅 위에서 ‘나’는 “두 발을 딛고 선 그곳이 넓은 땅이든 좁은 땅이든, 평평한 땅이든 가파른 땅이든, 멀쩡한 땅이든 부서진 땅이든 상관없이” “끈질기게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경착륙’ ‘폭락’ 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즈음, 간단치 않게 들리는 작품의 메시지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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