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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꼭 알맞은 멜랑콜리를 품은” 형사의 밀실 미스터리

등록 2022-07-15 05:00수정 2022-07-15 11:31

잠긴 방
마르틴 베크 시리즈 8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l 엘릭시르(2022)

오랫동안 벽지의 일부인 양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이 문득 새로운 인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스웨덴 추리소설인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그런 책이다. 한 가지 이유는 얼마 전 에스엔에스 등지에서 화제가 되었던 스웨덴식 손님맞이이다. 스웨덴에서는 식사 시간쯤에 초대 없이 찾아온 손님은 아이의 친구라도 식사대접을 하지 않는다는 관찰에 궁금증이 일어 스웨덴 소설을 펼쳤다. 또 다른 이유는 영화 <헤어질 결심>이다. 박찬욱 감독이 최근작 <헤어질 결심>의 기자간담회에서 남자 주인공인 형사 캐릭터에 영감을 주었던 것이 마르틴 베크라는 말을 한 이후로, 이 형사가 다시 궁금해졌다. 의문에 대한 답을 먼저 말하자면, 소설에서는 식사 시간이든 아니든 불쑥 찾아온 경찰 손님에게 맥주, 차, 샌드위치 등을 대접했다. 그리고 마르틴 베크와 <헤어질 결심>의 장해준은 꽤 유사점이 있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잠긴 방>은 마르틴 베크의 여덟번째 소설로 1972년도 작품이다. 작가들의 처음 구상대로 이 시리즈는 스웨덴 사회의 부조리를 냉철한 사회 관찰과 블랙코미디 풍의 대화를 곁들여 묘사한다. <잠긴 방>도 이 시리즈의 일부로서 경찰 소설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회의 종기 같은 중범죄가 터지면, 그를 성실하게 추적하는 직업인으로서의 경찰들, 그리고 그들의 발목을 잡는 조직의 문제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잠긴 방>은 거기에 제목 그대로 밀실 미스터리를 더했다. 본인 표현대로 추리소설을 읽지 않는 마르틴 베크로서는 작은 일탈이다.

<잠긴 방>에서 주요한 사건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스톡홀름 호른스가탄의 한 은행에서 일어난 강도 살인 사건이다. 한 여성이 은행을 털다가 반격하는 고객을 죽이고 도주한다. 경찰들은 이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은행 강탈 사건을 저지하려고 전력을 다한다. 이전 사건에서 총상을 입고 15개월 만에 복귀한 마르틴 베크에게는 좀 더 기이한 사건이 배정된다. 60대의 전직 창고지기가 안에서 완전히 잠긴 방 안에서 총을 맞고 2개월도 지나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다. 소설은 은행 강도 사건과 밀실 살인 사건 사이를 오가다가 마지막에 이르면 별개로 보였던 두 사건을 엮으며 우연으로, 혹은 필연으로 정의가 실현되는 해결로 끝을 낸다. 정의가 선택적으로 내려진 아이러니는 있지만 그것도 현실적이다.

북유럽 소설은 긴 겨울밤을 위한 책이라는 인상이 있지만, <잠긴 방>은 7월이 배경이기도 하고 마르틴 베크의 얼어붙은 사생활에도 훈풍이 불어오는 등, 좀 더 여름에 적격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소설은 밀실 미스터리라는 두뇌 게임을 풀어가면서도, 정치 경찰이나 직업적 부패, 마약과 강탈, 테러 등의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한 고찰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물론 그 한가운데는 추리 작가 마이클 코널리가 서문에 표현한 대로 “딱 알맞은 멜랑콜리를 품고서 일하는” 형사 마르틴 베크가 있다. 늘 적확하게 현장의 일을 풀어나가려 하는 마르틴 베크는 이상화된 경찰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일상적인 직업인이고, 여기서 동시대적 공감이 우러난다. 지난 세기에 쓰인 이 소설이 늘 새롭게 짜릿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박현주/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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