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통영 남해의봄날, 전남 순천 열매하나, 강원 고성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 포도밭출판사, 대전 이유출판. 전국에 흩어져 각자 분투하며 개성 있는 책을 만들어온 지역 출판사 다섯 곳이 뭉쳐 하나의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어딘가에는 @ 있다’의 첫 다섯권이 지난주 전국 지역 서점 60여 곳 진열대에 먼저 올라갔다. 150쪽 안팎의 아담한 크기에 안삼열 그래픽 디자이너가 노랑과 검정으로 시리즈의 결속감을 단단히 묶은, 표지부터 인상적인 책들이다. 각 책의 내지 맨 뒷장 한쪽에 빼곡히 적혀 있는 시리즈 소개글에는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간의 풍화를 견디고 새로운 파도를 타고 온 지역의 삶을 여행처럼 만나 보시길 바랍니다”라고 되어 있다.
2년 전 가을, 시리즈의 운을 처음 띄운 이는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아 다섯 출판사 가운데 맏언니 격인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다. “개인적 친분보다는 책을 통해 눈여겨보게 된 출판사들이에요. 각자 잘하고 있지만 같이 뭔가를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또 지역에서 일하다 보면 외롭기도 하고 마케팅에 어려움을 겪거나 하는 비슷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서로 소개하는 식으로 다섯 출판사가 뭉치게 됐죠.” 다섯 출판사 대표들은 모두 서울서 일하다 지역에서 출판사업을 시작한 이들이다. 정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처럼 모두가 고민을 의논할 상대가 생겨서 좋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5개 지역 출판사가 손잡고 만든 ‘어딘가에는 @ 있다’ 시리즈 첫 출간 책들. 남해의봄날 제공
지난해 초부터 대표 5명은 ‘줌’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기획을 구체화했다. 처음에는 지역의 숨은 고수를 발굴해본다거나 하는 좀 더 구체적인 틀을 갖춘 시리즈도 생각했지만, 출판사마다 가진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장소성을 띠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시리즈의 성격을 잡았다. 모든 책 제목의 맨 앞에 들어가는 단어인 ‘어딘가에는’이 이 장소성을 보여주는 시리즈의 인장이다. 그래서 각 책들은 사회비판적 이슈에서 사적이고 문학적인 산문까지 저마다 다른 결을 보여준다. <어딘가에는 원조 충무김밥이 있다>(정용재 지음·남해의봄날)는 통영의 유명한 지역 음식인 충무김밥 맛집들을 다니면서 이 음식의 유래와 역사를 짚는 반면,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한인정 지음·포도밭출판사)는 결혼으로 옥천 지역에 자리잡게 된 베트남 여성들이 처한 곤경과 이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연대를 집단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냈다. <어딘가에는 도심 속 철공소가 있다>(임다은 지음·이유출판)는 80년대까지 대전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지만 지금은 쇠락해가는 원동 철공소 거리의 장인 3인을 만나 땀 흘리는 삶에 대한 따뜻한 증언을 기록했다. <어딘가에는 마법의 정원이 있다>(장성해 지음·열매하나)는 관 주도의 화려한 정원 축제가 유명한 순천에서 마을재생의 일환으로 원도심 저전동 주민들과 함께 만든 소박하고 사랑스러운 정원마을 이야기다.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이동행 지음·온다프레스)는 서울에서 살다 결혼과 함께 태백으로 내려간 저자가 ‘레터프레스’라는 독특한 아날로그 인쇄작업에 도전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을 에세이로 써내려갔다.
`어딘가 @ 있다' 시리즈에 참여한 지역 출판사 대표들은 한달에 한번씩 줌 회의를 하면서 기획의 가닥을 잡아나갔다.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정미 이유출판 대표, 천소희 열매하나 대표, 정은영 남해의봄날 대표,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 최진규 포도밭출판사 대표. 남해의봄날 제공
지역 책방들은 시리즈 5권을 모두 팔고 있지만 저마다 속해 있는 지역에 관한 책들의 판매량이 더 높다고 한다. 주민들의 지역 출판에 대한 애정과 응원이 담긴 판매일 터다. 정은영 대표는 이러한 움직임들이 “지역출판을 활성화하고 지역 출판사들의 또 다른 합심과 새로운 시리즈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딘가에는’ 시리즈는 해마다 5권씩 새로운 책들을 펴낸다는 계획이다. 각 권 1만3800원.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남해의봄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