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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생각] 금빛 민들레, 어쩌다 잡초의 저주를 받았는가

등록 2022-06-24 05:00수정 2022-06-24 11:04

미움받는 식물들
아직 쓸모를 발견하지 못한 꽃과 풀에 대하여
존 카디너 지음, 강유리 옮김 l 윌북 l 1만8800원

지상에 꽃을 피우는 식물은 40만종가량이다. 그 가운데 본디 잡초는 없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식물은 인간 없이 잡초가 될 수 없고, 인간은 잡초 없이 지금의 인류가 될 수 없었다.” 인간이 작물을 길들였다기보다 작물이 정착농업을 하도록 인간을 유인했으며, 이래 1만2000년의 역사는 잡초와 싸우는 인간의 기록이란 얘기다.

잡초의 정의부터 제각기 내린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밖에 없다. “제 자리를 벗어난 식물”이라는 옛말엔 농본적 순리가 엿보이고, “장점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라는 에머슨의 설명은 그가 자연의 효용을 이상주의적으로 짚은 <자연론>의 각주처럼 들린다.

꽃이나 작물이 잡초가 되기까지 ‘뒤웅박 팔자’라는 건 민들레로 특히 여실해진다. 입때껏 한국은 물론이거니와, 민들레를 악마 취급하는 미국에서도 20세기 전까진 잡초 아닌 순수의 노란꽃이었다. 19세기 월트 휘트먼은 시 ‘첫 민들레’에서 꽃을 어린이에 비유하며 “새벽처럼 순수하게, 금빛으로 조용히” 피어난다고 노래했고, 프로이트는 “노란색 꽃이 거의 환각처럼… 눈부실 정도로 도드라져 보였다”며 제 소싯적 기억 속에 각인된 민들레와 소녀의 이야기를 문헌에 남기기도 했다. 민들레의 격은 미국의 가정에서 너도나도 푸른 잔디밭을 가꾸면서 달라진다. 1860년대 남북전쟁 뒤 혼돈상에 대한 반작용으로 잔디정원에 질서에 대한 욕구를 투사했고, 노란꽃, 바람에 이는 홀씨는 빠르게 매력을 잃는다.

민들레(Dandelion). 사자(Lion)의 이빨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이다. 노란색 민들레의 꽃말은 우정, 행복, 평화이지만, 미국선 그리 간주되지 않을 법하다. 윌북 제공
민들레(Dandelion). 사자(Lion)의 이빨을 뜻하는 라틴어가 어원이다. 노란색 민들레의 꽃말은 우정, 행복, 평화이지만, 미국선 그리 간주되지 않을 법하다. 윌북 제공

구글에는 민들레를 박멸하는 방법 등의 문의나 정보가 수없이 검색된다. 구글 화면 갈무리
구글에는 민들레를 박멸하는 방법 등의 문의나 정보가 수없이 검색된다. 구글 화면 갈무리

20세기 들어 각 가정은 등유, 황산, 심지어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해 민들레를 말살하고자 했다. 농약 회사, 부동산 중개업자가 가세한 건 물론이다. “단정하지 못하다는 표식”, “사회질서를 따르지 않는 무례한 모욕”, “가난하고 불경한 자들만 내버려” 두는 풀, 그것이 미국사회 민들레고, 민들레는 그 토양에서 더 독해졌을 뿐이다.

학계에선 일반적으로 쉬운 발아, 끈질긴 종자, 빠른 성장, 자가수분, 종자 산포능력 등을 특성 삼아 잡초를 ‘포착’해보려는데, 역설적이게도 진짜 잡초는 이런 범주화를 눙칠 것이다. 돼지풀이 미군에 의해 일본, 한국으로, 말하자면 전쟁특수로 제 들판을 넓혔을 뿐인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인간에 의해 ‘역진화’한 잡초 8가지로 칡뿌리처럼 굵고 촘촘히 엮인 둘의 관계를 <미움받는 식물들>이 풀어낸다. 그 식에 코로나바이러스와 인간을 대입해도 억지랄 게 없다. “민들레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 어떻게 해서 호감과 반감으로 양분되었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는 그의 단단한 고백은, 저자의 30년 잡초 연구로 식물을 상대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어렵다는 걸 일깨웠다는 진솔한 고백과 닿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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