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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폐경 아니고 ‘완경’입니다, 우리가 몰랐던 여성건강의 모든 것

등록 2022-06-24 05:00수정 2022-06-26 14:55

“여성은 자신의 난소보다 훨씬 더 큰 존재들이다”
산부인과 의사 제니퍼 건터 <완경선언> 번역 출간
여성을 출산 도구로 보는 가부장제 사회
부족한 완경기 담론과 정보 공백 채우는
신체적 변화, 건강 영향, 대처법 등 담아
&lt;완경선언&gt;을 쓴 산부인과 의사 제니퍼 건터는 완경기 건강관리는 ”여성건강을 위한 의학”이라고 말한다.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완경선언>을 쓴 산부인과 의사 제니퍼 건터는 완경기 건강관리는 ”여성건강을 위한 의학”이라고 말한다.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완경선언
팩트와 페미니즘을 무기로 내 몸과 마음을 지키는 방법
제니퍼 건터 지음, 김희정·안진희·정승연·염지선 옮김, 윤정원 감수 l 생각의힘 l 2만2000원

50살인 내 나이 전후로 10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여성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30~40대를 지나며 줄어드는 생리량에 ‘이러다 완경이 되는 건가’ 싶던 어느 날, 말 그대로 ‘쏟아지는’ 생리혈이 속옷은 물론 겉옷에까지 배어 나오면서 ‘멍청하고 한심한 여자’가 되어버린 듯한 경험을 해본 적 있느냐고.

주변에 완경을 맞은 여성은 많지만 이런 걸 ‘완경이행기’의 증상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 매해 자궁검진을 하는 의사조차 “완경기에 들어선 걸까요?” 질문을 던지면 “생리혈 색이 바뀌지 않으면 아직 아닙니다”라는 단답형 답변만 반복했을 뿐이다. <완경선언>의 저자가 비행기 출발 직후 난데없는 ‘쏟아짐’을 느끼며 화장실로 달려간 사연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게 과정의 일부임을 알게 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솔직한 산부인과 의사”로 알려진 제니퍼 건터(56)가 쓴 이 책은 생리불순, 수면장애, 발열감이 완경 과정의 전부가 아님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여성이 경험하는, 그것도 수년에 걸쳐 이어지면서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기도 하는 완경에 대한 정보가 왜 이렇게 부족한지, 몸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수반되는 병적 증상들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세심하게 설명한다.

의학적으로 완경은 “마지막 월경을 한 이후 12개월 동안 월경이 없을 때 공식적으로 확정된다.” 책에 나오는 서구 기준으로 50~52살, 한국은 평균 49.7살에 완경이 일어난다. 그런데 몇달씩 건너뛰다가 다시 “돌아오고” 불면증, 발열감, 치매일까 아찔해지는 ‘브레인포그’ 등을 동반하는 그 과정은 길게는 5~6년까지 이어진다. 또한 완경으로 안내하는 호르몬 변화는 심장질환, 골다공증, 우울증, 요로감염 등의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엇보다 생식활동 기간이 끝나면 오래지 않아 죽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여성은 완경 상태로 생의 3분의 1 이상을 산다. 완경기 건강관리가 곧 “여성 건강을 위한 의학”인 이유다.

그럼에도 완경에 대한 정보나 담론은 지극히 적다. 고대부터 여성을 출산 도구로 간주하며 “생식력이 없어지는 것은 여성이 죽음의 사신이 호출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한다는 오래된 믿음”이 있어왔기 때문이다. 1812년 ‘완경기’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완경 관련 용어 해설에 유독 ‘고갈’ ‘상실’ ‘위축’ 등 부정적 단어가 동원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 말투를 발기부전에 적용한다면, 페니스가 ‘닳디닳아서 못 쓰게 됐다’고 교과서에서 선언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의학에서 남성들은 온화한 완곡어법과 함께 나이를 먹는 반면, 여성들은 ‘더는 섹시하지 않은 곳’으로 느닷없이 추방된다.” 우리말로 따지면 아직도 ‘완경’이라는 말보다 ‘폐경’이라는 말이 산부인과 병원에서조차 더 많이 쓰인다.

저자는 책의 머리말과 같은 ‘선언문’에 이렇게 썼다. “완경을 둘러싼 침묵과 수치심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팩트와 페미니즘을 장착할 것을 요구한다.” 이어지는 본문에 우리가 잘 몰랐던 완경기의 증상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의 팩트를 꼼꼼히 채워 넣었다. 한 예로 여성성과는 별 관계 없어 보이는, 하지만 암과 함께 여성 사망원인 1, 2위를 다투는 심장질환이 완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완경으로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에스트로겐 분비가 감소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비슷한 비율의 대사활성지방을 축적함에 따라 심장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 하지만 심근경색을 경험하는 여성의 42%가 가슴 통증을 겪지 않는 등 남성과는 다른 증상을 보이는데 심근경색에 대한 교육은 남성 중심으로 이뤄지는 탓에 여성은 적당한 치료 시기와 방법을 놓치기 쉽다고 지적한다.

완경기 증상 완화를 위한 처방을 직접 하는 의사 입장에서 저자는 “큰 그림의 일부를 이루는 퍼즐 조각”으로 완경기호르몬요법(MHT: Menopausal Hormone Therapy)을 지지한다. 1990년대 말 미국 완경기 여성의 40% 이상이 도움받던 이 요법은 미국 국립보건원의 지원으로 운영된 여성 건강 연구 프로그램인 ‘여성 건강 이니셔티브’(WHI: Women’s Health Initiative)가 10만명이 넘는 여성을 대상으로 관찰 연구한 결과 일부 호르몬 요법이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결과를 내놓으며 사용이 곤두박질쳤다. 저자는 이 결과를 미디어가 선정적으로 과장하면서 부작용 피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환자들이 심장질환과 골다공증으로 조기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또한 부작용이 ‘희귀한 경우’(1만명당 1~10명) 정도인 치료법이 사회적인 공포 조장으로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부작용이나 합병증 등 위험요소를 개선해 여성 건강을 증진하는 연구까지 멈춰진 것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호르몬 요법 등 의학적 도움만 강조하는 건 아니다. 독자 입장에서 더 흥미롭게 읽히는 건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공감을 일으키는 정보들이다. 저자는 완경기 건강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은”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자신 역시 얼마나 자주 쉽게 포기해왔는지 고백하고는 “운동은 거저 생기는 돈과 같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입해야” 한다고, 당장 운동하고 싶게 만드는 조언을 한다.

생식기의 변화나 완경기 섹스 등 드러내기 껄끄러웠던 주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다룬다. 특히 그릇된 정보, 이를테면 성욕감퇴를 병증으로 몰아가는 제약업계의 장삿속이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요법, 이제는 밥처럼 먹는 각종 건강보조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설명한다.

“모든 여성이 완경에 관해서만큼은 산부인과 전문의 수준의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바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의 선언문은 이렇게 끝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완경기를 잃어버린 젊음, 허약함, 가치 하락과 연관 짓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억하길 바란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와 주체성, 목소리, 지식을 가다듬어 건강을 유지하고 정당한 우리의 몫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완경 선언문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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