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생애·저술·사상 하나로 꿰는 원효 깊이 읽기

등록 2022-06-17 05:01수정 2022-06-17 10:31

원효 전문가 남동신 교수 연구서
파계 환속 후 무애 실천 조명

당대 동아시아 신·구역 불교 갈등
‘일심’과 ‘화쟁’으로 극복 주목

원효의 발견
남동신 지음 l 사회평론아카데미 l 3만5000원

원효(617~686)가 우리 역사상 최고의 불교사상가라는 데는 학계에 이론이 없다. 원효의 사상에 대한 연구와 저술 활동은 근년에 들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국사학자 남동신 서울대 교수가 쓴 <원효의 발견>은 원효의 생애와 저술과 사상을 두루 깊숙이 파헤쳐 들여다본 학술서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종래의 원효 연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본 원효상을 면밀하고도 과감하게 그려낸다.

원효가 우리 역사가 낳은 최고의 불교사상가로 꼽히는 이유는 방대한 저술에 담긴 사상의 독창성에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시기에 활동한 원효는 70여부 150여권에 이르는 저작을 남긴 당대 동아시아 최대의 저술가였다. 원효의 사상이 담긴 저작은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불교의 원산지인 인도에까지 전해졌다. 그만큼 사상이 독창적이었다. 7세기 후반~8세기 전반 최고조에 이른 동아시아 교학 불교를 이해하는 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원효다. 이 책은 원효 사상의 핵심으로 꼽히는 ‘일심’과 ‘화쟁’과 ‘무애’를 유기적으로 엮어 원효의 삶과 생각을 한 줄에 꿰 들어간다.

이 책에서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원효의 생애와 관련된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대목이다. 흔히 원효는 후배 의상(625~702)과 함께 650년과 661년 두 차례 중국 유학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상의 생애를 중심에 놓고 기술한 전기를 오독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원효가 중국 유학을 떠난 것은 650년 한 차례였으며, 이때 고구려 국경에서 간첩으로 오인받아 체포되는 바람에 돌아와야 했다. 원효가 무덤 속에서 잠을 자다 ‘해골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의 깨달음을 얻은 것도 이 귀국길의 일이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일본 고산사 소장 원효 진영. &lt;한겨레&gt; 자료사진
일본 고산사 소장 원효 진영. <한겨레> 자료사진

이 책이 ‘원효의 발견’인 것은 그동안 학계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파계·환속 이후의 원효 삶에도 조명을 비추어 원효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원효의 파계 계기가 된 것은 태종무열왕(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은 일이다. 요석공주가 과부였다고는 하지만, 공주가 출가 승려와 혼인하는 것은 신라 왕실의 허락과 지지가 있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사정에 비추어 지은이는 원효와 공주의 혼인을 일종의 전략적 제휴로 해석한다. 최초의 진골계 왕실인 당시 신라 왕실이 나라를 안정시키려고 원효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원효는 백성들 사이에 신망이 컸다.

더 주목할 것은 원효가 혼인과 함께 환속한 뒤 스스로 ‘거사’라고 부르며 세속적 삶 속에서 불교의 진리를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에 원효가 추구한 불교는 ‘승과 속이 다르지 않다’는 승속불이의 거사불교라고 할 수 있다. 그때 원효가 모델로 삼은 사람이 대승불교 경전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거사였다. <유마경> 속의 유마거사는 파계에 가까운 자유분방한 행동을 하며 중생을 제도한 사람이다. <삼국유사>는 원효가 광대가 춤출 때 쓰는 커다란 박을 얻어,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길로 생사를 벗어난다’는 <화엄경>의 구절을 따라 ‘무애’(걸림 없음)라고 이름 짓고는 노래하고 춤추며 가난한 사람들을 교화했다고 전한다. 원효는 승과 속을 초월해 중생을 이끄는 무애의 실천가였다.

이 책이 더욱 힘주어 구명하는 것은 원효의 핵심 사상인 ‘일심’과 ‘화쟁’이 담긴 대표적 저술 <대승기신론 소·별기>와 <금강삼매경론>을 쓴 배경과 목표다. 지은이가 주목하는 것은 당시 막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현장(602~664)의 신역 불경이 일으킨 파문이다. 현장은 17년 동안 인도에 유학한 뒤 645년 돌아와 대규모 불경 번역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장의 번역은 새로운 관점 아래 진행됐기에, 새 번역서의 출간과 함께 신역과 구역을 둘러싸고 불교계 내부에서 대립과 갈등이 격해졌다. 이 갈등은 한편으로는 대승불교의 양대 사상인 ‘중관학’과 ‘유식학’ 사이에서 벌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식학 내부에서 구유식과 신유식 사이에서 벌어졌다. 현장의 신역 불경은 번역이 되는 대로 거의 동시에 신라에 전해져 중국과 마찬가지로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원효가 내세운 ‘화쟁’ 곧 ‘쟁론을 화해시킴’은 우선은 바로 이 불경 해석을 둘러싼 갈등을 더 높은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것이었다. 이때 원효가 밝힌 더 높은 차원이 바로 ‘일심’(한마음)이다. 일심이라는 통일적 관점으로 서로 다투는 주장들을 화합시킨 것이다.

원효가 ‘소’(주해)와 ‘별기’(노트)를 단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정수를 간명하게 정리한 일종의 개론서다. 원효는 ‘별기’의 서문(‘대의’)에서 <대승기신론>을 통해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을 모두 비판함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다고 선언한다. <대승기신론>을 빌려 중관과 유식이라는 대승불교의 양대 사상을 종합한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이어 <대승기신론>에 의거해 만물의 근원을 ‘일심’이라고 규정하고 일심을 이루는 것으로 ‘진여문’과 ‘생멸문’을 제시한다. ‘진여문’은 일심이 본래 그대로 오염되지 않은 채 드러나는 진리의 문을 뜻하며, 생멸문이란 일심이 무명·번뇌에 가려져 생사고락의 육도를 윤회하는 중생의 문을 가리킨다. 진여문과 생멸문은 일심의 두 문이다.

원효의 일심사상이 더 명료하게 드러난 저술은 <금강삼매경론>이다. <금강삼매경론>은 <금강삼매경>의 주해서라는 뜻이다. 지은이는 <금강삼매경>이 원효 당대인 7세기 중엽 신라에서 성립한 ‘위경’이라고 본다. 위경이라지만 <금강삼매경>은 구역 불교의 거의 모든 사상을 종합한 저작이며, 특히 ‘반야공관사상’ 곧 중관사상을 기조로 하는 저술이다. 이 책을 텍스트로 삼아 원효 자신의 일심사상을 펼친 것이 바로 <금강삼매경론>이다. 원효는 이 주해서에서 <대승기신론>을 해석할 때의 관점을 가져와 중관과 유식을 화해시키고자 했다. 다시 말해 <금강삼매경>의 골간인 중관사상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에 대립하는 유식사상을 끌어들여 서로 회통시킨 것이다. 이때 회통의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일심’이다. 이렇게 원효는 7세기 후반 동아시아를 휩쓴 신역·구역 갈등을 일심사상으로 극복함으로써 한국불교사의 화쟁 전통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