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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생태경제학자 팀 잭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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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과 새로운 번영을 위한 사유
팀 잭슨 지음, 우석영·장석준 옮김 l 산현재 l 1만9800원 자본주의의 수호자들이 해마다 스위스 다보스에 모여 ‘무한한 성장’을 이어갈 다짐을 계속하는 동안, “다보스를 뒤덮은 눈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불평등과 기후변화, 이에 더한 전염병의 위기까지, 사람들은 갈수록 ‘과연 더이상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회의를 느끼고 있지만 “포스트 성장은 오늘날 여전히 당위적인 사상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성장 없는 번영>(2009)에서 사회적 경제, 생태경제을 주창했던 영국 경제학자 팀 잭슨(65)은 2021년 펴낸 책 <포스트 성장 시대는 이렇게 온다>에서 “성장을 내려놓아야 번영이 가능하다”고 더욱 강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이번 책에서 기존의 “문화적 신념” 체계를 뒤흔드는 데 주력하는데, “새로운 신화, 더 나은 이야기, 더 선명한 비전을 발전시키는 것이 (자본주의 성장 신화의) 붕괴의 역학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긴요”하기 때문이다.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경제 성장을 인간의 진보와 섞어 놓은 서사가 문화적 신념 체계로써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서사를 무너뜨리고 물질적인 ‘한계’ 아래에서도 ‘좋은 삶’을 사는 ‘번영’은 가능하다는 새로운 서사를 제시해야 한다. 지은이는 “국민총생산(GDP)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들만 빼고 모든 것을 손쉽게 측정한다”고 연설했던 미국 정치인 로버트 케네디로부터 출발해,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 여성 요트 항해자 엘렌 맥아더,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 시인 에밀리 디킨슨 등 다양한 안내자들로부터 이 ‘포스트 성장 서사’를 위한 자원들을 끌어모은다. 자본주의는 “투쟁인 자연, 경쟁인 이윤, 만족할 수 없는 것인 소비”라는 삼위일체를 뼈대로 삼아 무한한 성장을 요구하는 서사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안내자들이 보여주듯, 물질적 세계에는 엄연한 한계가 존재하며 그 한계야말로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예컨대 인간의 건강은 칼로리 섭취를 늘리기만 해서는 달성할 수 없으며, 과잉과 부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 물질적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고 해서 우리가 긴축이나 현실 부정 같은 우울한 대안들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계를 알기에 우리는 적응, 균형, 협력, 몰입, 사랑 등을 통해 단지 한 유기체의 보전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것들을 창조할 수 있다. ‘포스트 성장’은 단지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길이 아니라, 더 좋은 삶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인간 본성에 더없이 충실하고 진보적인 길임을 밝힌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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