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석사 논문, 빅데이터 만나
사이버공간의 혐오문화 전반 분석
‘내부의 적’에 대한 강렬한 증오…
‘평범’을 꿈꾸는 이들의 불안·공포
사이버공간의 혐오문화 전반 분석
‘내부의 적’에 대한 강렬한 증오…
‘평범’을 꿈꾸는 이들의 불안·공포
<한겨레> 자료사진.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김학준 지음 l 오월의봄 l 1만9000원
사회학 연구자 김학준의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일베 데이터 분석’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기원과 이유, 또한 혐오의 시대에 맞서는 방법을 모색한 책이다. 저자는 일베가 ‘갑툭튀’ 괴물이 아니라 사이버공간의 탄생과 궤를 같이하며,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 그중에서도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고 강조한다. 딴지일보의 패러디, 일명 ‘짤방’으로 한창 주가를 올린 디시인사이드 등이 일베의 탄생과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일베는 이용자들이 자신들을 “무식하고 덜떨어진 ‘찌질이/루저’로 폄하”한 이들에 맞서 2012년 10월 ‘인증대란’을 일으키면서(?) 급성장했다. 한 여초 카페에서 일베를 루저라고 비난하자 일베 이용자 하나가 ‘일베 학력 인증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당장에 500여명에 이르는 일베 이용자들이 호응”했다. “‘여성’의 무시에 대항해 자신의 학벌을 드러냄으로써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이용자들은 여초 카페 고소·고발,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한 반동 등에 나섰다. 여성혐오는 이때 일베를 넘어 사회 전반에 걸친 하나의 흐름으로 번져나갔다. 저자는 일베 게시물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들이 ‘호남, 여성, 진보좌파’, 즉 내부의 적을 증오한다고 강조한다. 이 증오는 호남에 대한 멸시와 결합해 5·18 수정주의, 즉 “‘반골기질’을 가진 ‘홍어’들의 폭동”으로 5·18을 깎아내린다. 이들에게 여성은 “이기적이고 의존적이며 계산적인”, 더하여 개념도 없고 안보의식마저 없는 ‘김치녀(년)’이다. 진보좌파는 “북한 인민들의 고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위선적인 인간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일베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20~30대 남성 몇몇을 인터뷰한 결과, 온라인상에서 날 선 혐오 표현을 서슴지 않던 이들에게서 ‘불안’과 ‘공포’를 읽어낸다는 사실이다. 청년세대는 지금 변변한 직장을 찾기도, 하여 가정을 꾸리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보편적인 일이지만, 그렇게 못하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불안의 한 요인이다. 일베에게 “한국 여성 일반”은 “사랑의 이상을 물질화”하는 존재다.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고, 병역의무 같은 공동체적 책임도 회피하며, 일상생활에 전혀 필요 없는 물건, 즉 명품백에 집착하는 존재가 여성이다. 불안과 달리 ‘공포’의 원천은 외부의 적, 즉 북한이다. 애초에는 “연민과 답답함”에서 시작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북은 무식한 거고 종북은 나쁜 거”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촉발되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문제는 ‘일베’가 대표선수일 뿐, 일베식 혐오는 이미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에게 무시당하느니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택한 남성들은 각종 범죄를 통해 힘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여성가족부라는 전통적인 ‘적’의 수장”, 즉 장관에 대한 날 선 공격은 시도 때도 없었다. “젠더 갈등, 극한 대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도 성토되는 세상이 되었다. 일베식 공격은 정치권으로도 유입되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일베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돈된 형태의 인물”로, 내로남불과 냉소를 번갈아 던지면서 한국 정치를 희화화한다. 저자는 일베식 혐오의 기원과 구조를 밝힘으로써 “일베식 이죽거림과 선동가의 현혹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혐오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하는, 제법 의미 있는 책이라 할 만하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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