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안녕하십니까>의 저자 이병남 전 LG 인화원장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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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채용·평가·해임 등과 관계된 일’을 뜻하는 인사(人事)와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인사(人事)의 한자가 같은 건, 어쩌면 인사를 잘하는 것이 직원과 회사, 사회의 안녕을 위한 출발선 같은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대졸자 평균 취업 연령 30살, 정년은 60살. 30년 동안 주 40시간 노동으로 단순계산하면 직장인 한명이 평생 일하는 시간은 6만2400시간이다. 6만2400시간이라는 숫자 어딘가에서 우리는 일 때문에 숱한 고민과 갈등에 빠진다. 회사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때, 번아웃됐을 때, 까탈스러운 선배나 성향이 다른 후배를 마주할 때처럼 어느 것 하나 안녕하지 않은 회사에서의 나날들. 그리고 생각한다. 이런 고민을 나눌 멘토가 있다면.
엘지(LG)에서 21년 동안 인사와 교육 업무를 해온 ‘인사 전문가’ 이병남 전 엘지 인화원장이 일터에서 고민하는 ‘당신에게’ 스무편의 편지를 보냈다. <한겨레>에 1년6개월 동안 연재했던 ‘이병남의 보내지 못한 이메일’ 열아홉편을 다듬고 ‘엠제트(MZ)세대와의 관계 편’을 추가해 지난달 책 <회사에서 안녕하십니까>(동아시아 출판)로 출간했다. 2014년에 낸 <경영은 사람이다>(김영사 출판)에 이어 두번째 책이다. 첫 책이 시장, 기업, 인간을 화두로 삼아온 그의 35년을 정리하는 책이었다면, <회사에서 안녕하십니까>는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보낸 편지에 이 전 원장이 답하는 공감과 위로의 말이다.
지난 1일과 7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20여분 동안 그는 “1년 학비를 들고 유학을 갔다가 무일푼으로 한국에 와서 13년 만에 얻은 첫 집”을 구석구석 소개했다. 현관 옆엔 성공회대에서 최고경영자(CEO) 인문 공부로 친분을 쌓은 고 신영복 선생이 짓고, 써준 집의 이름 ‘우남재’(友南齋)가 쓰여 있다. “빛과 더불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집”이라는 뜻이다.
△△하는 12가지 방법, ○○○ 10계명, □□하는 기술…. 책을 봐도, 방송을 봐도 멘토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자칫 <회사에서 안녕하십니까>도 ‘이병남처럼만 하면 회사에서 안녕할 수 있다’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프롤로그를 읽는 순간 사라진다. 인간과 경영이라는 화두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을 다듬어온 작가의 성찰적 태도 덕이다.
“칼럼을 쓰면서 ‘내 자랑 하지 말자’, ‘꼰대처럼 쓰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독자 중 한명이 ‘대기업 시이오가 쓴 책인데 자기계발 하라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거 좀 할 걸 그랬나요?(웃음) 자기계발은 필요하면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예요. 에너지가 떨어지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놓이면 (아무리 옆에서 말해도) 길을 찾을 수가 없어요. 타인에게서 위로와 인정·공감을 받고 자기 존재에 대한 긍정성을 확인하면 기운이 저절로 나요. 전 그게 인간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이 전 원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조지아주립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다 1995년부터 21년간 엘지그룹에서 인사·교육·노사관계 업무 등을 맡았다. 2008년 엘지그룹 임직원의 교육을 책임지는 인화원장(사장)으로 부임해 2016년 퇴임하기까지 그의 40대와 50대는 “치치(치열하고 치밀)했다.” 직원들에게도 ‘치치하고 있냐’고 자주 물었다.
엘지 인화원이 10년 전 도입한 난임 휴직 제도와 2000년 엘지그룹이 국내 기업 최초로 시행한 주 5일 근무제 모두 ‘치치했던’ 그의 아이디어였다. 엘지그룹 내에 최고인사책임자(Chief Human resource Officer)라는 직책을 만든 것도 그였다. 이유는 다 달랐지만, 목적은 하나.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하는 것이었다. “정말 후배들을 잘 키우고 싶었어요. 나만 여기(엘지)서 잘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여겼거든요. 회사가 개인의 삶을 고민한다고 생각하면 자발성과 창의성도 높아지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엘지그룹 인사팀장(부사장)을 맡았을 때다. 워크숍에서 팀원들에게 들은 지적은 뼈아팠다. “후배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드 트레이닝 했었거든요. 후배를 육성하고자 하는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개개인에게 쏟는 관심이 부족했던 거죠.” 관심은 ‘이심전심’으로 돌아왔다.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아도 일이 진행됐다. 재작년엔 ‘치치’하며 함께 일했던 후배 중 세명이 전무가 됐고, 한명은 부사장이 됐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밥을 거하게 샀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리더는 “다른 사람을 리더로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밑에서 어떤 사람들이 커오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정말 리더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더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죠.”
이 때문에 리더의 자격이 아닌 학연·지연·혈연으로 인사 하는 건 “하치 중의 하치”라고 지적했다. 연줄 인사로는 직원들에게서 긍정적 에너지를 끌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잘된 인사’는 평등성과 공평성의 원칙을 때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다. 평등성의 원칙은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의 노동을 말한다. 노동하는 모든 사람은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뜻이다. 공평성의 원칙은 성과를 내는 사람에겐 승진이나 보너스 같은 보상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신 성과에 따른 차등을 주려면 잘 마련된 평가나 인사 제도가 전제돼야 해요.”
‘치치’하게 회사 생활을 하던 그는 정년을 2년 앞두고, 은퇴를 준비했다. 밀려나듯 회사를 나가지 않고 은퇴 시점은 스스로 정하겠다는 다짐이었다. 회사에도 ‘퇴임할 준비 됐다’고 미리 말해뒀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하고 보니 고비가 왔다. 책엔 은퇴 뒤 노화를 겪은 그의 상실감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노화를 겪으면서 퇴임 뒤 3년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발목에 문제가 생기면서 좋아하던 등산을 못 하게 됐고, 백내장까지 왔거든요. 게다가 회사로부터 받았던 익숙한 지원 시스템들이 은퇴하면서 순식간에 다 없어졌어요. 회사에서 받은 예우가 마치 나라는 존재와 늘 함께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는데 말이죠. 거기서 벗어나는 데 3~4년쯤 걸린 것 같아요.”
은퇴를 후회하진 않았지만, 적막감은 몰려왔다. 그러던 차에 공기업 시이오, 정부기관장 등의 제안이 왔다. ‘다시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은 이내 접었다. “회사를 운영하는 어떤 분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어요. 그분이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먼저 가봐야겠다는 거예요. 본인이 일 봐주는 기업체 회장이 급하게 찾는다면서요. 그때 든 생각이 ‘예우는 스트레스를 수반한다’였어요. 젊었을 땐 문제 되지 않던 스트레스가 노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선 해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러면서 은퇴 뒤 내 역할을 고민했어요.”
이병남 전 엘지 인화원장이 2012년 제주올레 13코스에서 찍은 사진. 이병남 전 원장 제공
제안받은 자리들을 모두 고사했다. 퇴임 1년 전부터 하던 사외이사와 초빙교수 자리도 각각 3년, 2년만 채우고 그만뒀다. 현재는 제주올레·리영희재단·아름다운가게 등에서 이사로 활동하면서 조직의 성장을 돕고 있다. 삶의 모토도 ‘치치’에서 ‘느리게, 조용히, 심심하게’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심심하게’는 권태와는 완전히 달라요. 사회적 인정과 남들의 평가·칭송·명예에 개의치 않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심심한 거죠. 작년 후반기부터 ‘느리게, 조용히, 심심하게’에다가 ‘잘’을 붙였어요.” 잘 지낸다는 건 즐거운 것이다. 그에게 즐거운 건 젊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사이트를 얻고, 위로받을 때다. 그가 인터뷰 중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도 ‘후배’ ‘도움’이다.
“최근에 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잊히지 않는 대사가 있어요. 여자 주인공 염미정이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에요. 되게 마음이 아팠어요. 노동이란 게 호구지책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것이고, 인간관계도 할 수 없이 맺는다는 뜻이잖아요. 관계가 노동이라는 표현에서 (회사 내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절박함이 느껴졌어요.”
그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맨 위층이다. ‘제현상’(齊賢上·지혜와 나란히 하는 사람들의 윗방)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붙인 이 방은 북한산을 정면으로 한다. 통창 앞엔 재미있는 풍경이 눈에 띈다. 낮은 상 위엔 달라이 라마와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이 나란히 있고, 바로 옆 책꽂이엔 성모마리아상과 불상이 함께 있다. 그가 “서로 친하게 지내고 계시죠”라고 말했다. ‘후배와 함께 성장’을 고민해온 그의 삶과 어울리는 풍경이다.
그는 현직 사장으로는 드물게 시민단체 추천을 받아 사외이사를 했다. 케이비(KB)금융지주 사외이사로 활동할 때 그의 별명은 ‘노 맨’이었다. 주 전산기 교체 문제로 ‘케이비 사태’를 촉발한 전임 경영진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낸 사외이사는 그가 유일하다. “경제개혁연대에서 사외이사로 추천하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했을 뿐이에요.”
이는 자신이 ‘경계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모두 한국전쟁 때 피난을 왔어요. 또 저는 서울에서 살다가 전학 간 대구에선 ‘서울내기’라며 놀림을 당했어요. 상처가 컸죠. 그리고 경기고를 가보니 학생 대부분 고관대작, 재벌집 아들이에요. 저는 아버지가 직업군인으로 간신히 중산층 정도였거든요. 결정적인 마이너리티를 느낀 건 유학을 가서죠. 1980년대에 미국에서 아시아인은 비주류 중의 비주류잖아요. 제가 서 있는 곳은 주류였지만 마음은 비주류에 있었기에 한쪽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병남 전 엘지 인화원장이 자택 계단에 앉아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최근엔 ‘늙음’에 생각이 자주 머문다. 현직에 있었다면 바빠서 할 수 없을 고민이다. 스위스의 의사이자 작가 폴 투르니에의 책 <노년의 의미>는 세번이나 밑줄 치면서 읽었다. 토머스 키팅 신부의 동영상도 찾아본다. “퇴임하면서 ‘노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서인지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키팅 신부가 한 말 중 ‘은퇴와 노화는 의식의 전환으로의 초대장’이라는 말이요. 다음에 또 책을 쓴다면 ‘노화 속에 성장하는 백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그가 꼭 써달라고 한 말이 있다. “제 책을 다 읽은 독자 다섯명만 모이면, 내가 갈 수 있는 곳 어디든 가려고 해요. 이건 꼭 좀 써주세요.” 그는 오늘 울산과 내일 포항, 이달 26일엔 서울 연희동에 있는 ‘하노이의 아침’에서 북토크를 한다. 조직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라면 따듯한 위로를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