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주 지음 l 현대문학 l 1만4000원 열두살 때 친한 동생 미성과 함께 유괴됐다가 혼자 풀려난 지희는 17년 뒤 사건의 용의자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장호성이라는 사람이 죽고 난 뒤 유품을 정리하던 목사가 수첩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죽은 아이 이름 ‘미성’과 주변 정황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당시 용의자로 미성의 아빠 도형을 지목했던 지희는 갑자기 등장한 용의자가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 그는 오랫동안 기억 한 구석에 묻어두었던 진실을 다시 찾아 나가기 시작한다. 젊은 소설가 조진주의 첫 장편소설 <살아남은 아이>는 살아남은 ‘아이들’의 이야기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롭게 지내던 미성과 단짝처럼 지내던 지희는 홀로 살아남았다. 유괴되기 직전 함께 놀다가 헤어진 뒤 한참 뒤에 다시 만난 룸메이트 규연은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방치에서 ‘살아남은 아이’다. 각자의 상처를 굳게 다물고 사는 두 친구의 삶에 시현이라는, 부모의 학대에서 어쩌면 ‘살아남은’ 그러나 결국 살아남게 될지는 모를 아이가 들어온다. 작가는 이들이 “폭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작가의 말) 여정을 그려나간다. 소설은 유괴사건의 진범을 찾는 미스터리의 기본적인 틀거리를 따라가면서, 등장인물들의 마음속에서 현재형으로 흔들리는 여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유괴됐다가 살아남은 아이라는 낙인 아닌 낙인이 찍힌 지희는 유괴살인범 목격자라는 짐까지 지고 있다. “지희에게 끔찍한 내상을 입힌 것은 유괴범이었지만, 오랜 시간 서서히 지희의 마음을 갉아먹어온 쪽은 (미성 엄마) 은정이었다. (…)은정은 종종 지희 역시 피해자라는 사실을 잊은 듯이 굴었는데, 지희는 매번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겪은 고통이 타인을 향한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해준다고 믿는 걸까.” 작가는 또한 아동범죄 피해자인 지희와 규연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피해자성, 완벽한 논리가 아니면 입 다물기를 강요하는 폭력을 꼬집는다. 용의자로 도형을 지목했다가 곤경에 처했던 지희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이 혹 거짓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 진실을 주장할 용기는 사라져버리”면서 이중의 상흔을 얻는다. 그럼에도 지희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마침내 진범과 대면한다. 작가는 폭력과 맞서는 “지난한 투쟁의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소설에서 각자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는 규연, 시현과의 우정이 그 손이 됐을 터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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