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책&생각] 생산 아닌 ‘거주 가능성’ 추구하는 ‘녹색 계급’

등록 2022-06-10 05:00수정 2022-06-10 10:14

녹색 계급의 출현
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브뤼노 라투르·니콜라이 슐츠 지음, 이규현 옮김 l 이음 l 1만5000원

브뤼노 라투르(75)는 인간이 아닌 비인간 행위자를 주목하는 과학기술학에서 출발해,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적 차원의 정치철학을 갈고닦아 온 사상가다. <가이아 마주하기>(2017),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2018), <나는 어디에 있는가>(2021) 등 최근 저작들에서 전 지구적 생태 위기(‘신기후체제’)에 맞설 ‘생태정치학’을 점점 더 급진적으로 벼려온 그는 올해 덴마크의 젊은 정치학자와 함께 펴낸 책 <녹색 계급의 출현>에서 급기야 ‘계급’을 꺼내들었다. 이 책은 녹색(생태) 계급의 계급의식을 일깨우고 정치적 투쟁을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 ‘팸플릿’이다.

자유주의·사회주의가 지난 세기를 주도했다면, 기후·에너지·생물다양성 위기 등이 지구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엔 단연 ‘생태주의’가 있다. 그러나 여태껏 생태주의는 ‘파국이 닥치면 행동이 따르겠지’ 수준에 그칠 뿐 공통의 지평과 갈등의 전선을 뚜렷하게 만들어내지 못해 왔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진단이다. 여기서 “전투 대형”을 갖추는 데 필수적인 계급의 문제, 곧 ‘녹색 계급’ 형성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녹색 계급은 사회를 희생시켜 경제를 자율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기존 좌파와 연속성을 지니지만, ‘인간의 생산·재생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와 불연속적이다. 녹색 계급은 지구를 자원으로 축소하는 ‘생산’(키우기)이 아닌, 생산을 둘러싸고 ‘지구생활자’(또는 ‘지구사회 계급’) 전체에게 거주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온 ‘생성’(감싸기)에 집중한다. “결정적인 방향 전환은 생산의 확대가 아니라 거주할 수 있는 지구 환경의 유지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프랑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 위키미디어 코먼스.
프랑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처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장소로서의 세계’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수단으로서의 시계’를 접합해야 하기에, 녹색 계급에게는 과거의 계급처럼 역사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단순화하고 이를 향한 결집·수렴을 주장할 수 없다는 난점이 주어진다. “거주하고 생성의 실제를 돌보는 방식의 증가”로 나아가기 위해선 오히려 “모든 방향으로의 분산”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지 생산체계의 장악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단절을 모든 층위에서 요구한다. 지은이들은 “정치생태학의 다중성은 정치생태학으로 하여금 모든 방향에서 대안을 탐색할 수 있게 해주므로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 등 기존의 권력을 쟁취하면서도 그것을 전면적으로 뒤엎어야 한다는 것 역시 난점이다. 지은이들은 경제적 지배에만 한정됐던 기존의 이익 규정을 ‘거주 가능한 조건’에 맞춰 새롭게 제시하고 그 갈등 전선을 그려낼 수 있다면, 녹색 계급을 충분히 일깨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가 경계가 형해화되며 여러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뒤섞여 있는 ‘통합된 유럽’을 이런 생태정치를 실험해 볼 무대로도 제시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