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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의식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브뤼노 라투르·니콜라이 슐츠 지음, 이규현 옮김 l 이음 l 1만5000원 브뤼노 라투르(75)는 인간이 아닌 비인간 행위자를 주목하는 과학기술학에서 출발해,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적 차원의 정치철학을 갈고닦아 온 사상가다. <가이아 마주하기>(2017),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2018), <나는 어디에 있는가>(2021) 등 최근 저작들에서 전 지구적 생태 위기(‘신기후체제’)에 맞설 ‘생태정치학’을 점점 더 급진적으로 벼려온 그는 올해 덴마크의 젊은 정치학자와 함께 펴낸 책 <녹색 계급의 출현>에서 급기야 ‘계급’을 꺼내들었다. 이 책은 녹색(생태) 계급의 계급의식을 일깨우고 정치적 투쟁을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 ‘팸플릿’이다. 자유주의·사회주의가 지난 세기를 주도했다면, 기후·에너지·생물다양성 위기 등이 지구 전체를 위협하고 있는 지금엔 단연 ‘생태주의’가 있다. 그러나 여태껏 생태주의는 ‘파국이 닥치면 행동이 따르겠지’ 수준에 그칠 뿐 공통의 지평과 갈등의 전선을 뚜렷하게 만들어내지 못해 왔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진단이다. 여기서 “전투 대형”을 갖추는 데 필수적인 계급의 문제, 곧 ‘녹색 계급’ 형성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녹색 계급은 사회를 희생시켜 경제를 자율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기존 좌파와 연속성을 지니지만, ‘인간의 생산·재생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와 불연속적이다. 녹색 계급은 지구를 자원으로 축소하는 ‘생산’(키우기)이 아닌, 생산을 둘러싸고 ‘지구생활자’(또는 ‘지구사회 계급’) 전체에게 거주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온 ‘생성’(감싸기)에 집중한다. “결정적인 방향 전환은 생산의 확대가 아니라 거주할 수 있는 지구 환경의 유지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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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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