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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치유라는 폭력 없이, 장애와 함께 살아갈 수는 없나 [책&생각]

등록 2022-06-10 05:00수정 2022-06-10 13:02

김은정 교수, ‘초국가적 여성주의 장애학’
치유의 전제가 되는 정상성의 다양한 기준
장애·젠더·국가 관통하는 ‘치유 폭력’의 실체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동혜원 hwd@hani.co.kr, 게티이미지뱅크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김은정 지음, 강진경·강진영 옮김 l 후마니타스 l 2만3000원

수의사·과학자 황우석은 2005년 세계 최초로 ‘환자 맞춤형’ 배아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며, 척수 손상으로 장애를 갖게 된 가수 강원래를 휠체어에서 “벌떡 일으켜 과거에 보여줬던 날렵한 춤 솜씨를 다시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과학자가 난치병 정복에 한걸음 다가갔다’는 데 대한 열광은 같은 해 우정사업본부가 발행한 특별우표에 하나의 이미지로 고스란히 담겼다. 휠체어에 앉아 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켜 세우고, 달리고, 뛰고, 마지막에는 어떤 여성을 끌어안는, 연속된 실루엣 이미지. 장애를 갖기 이전의 과거와 장애를 치유한 뒤의 미래를 연결한 이 환상 속에서 장애를 갖고 있는 현재는 갑자기 증발해버린다. 뒤집어 읽어보면, 이 이미지는 장애인은 장애를 ‘치유’한 뒤에야 가족(이성애) 또는 국가로 당당하게 ‘복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장애여성 인권단체 ‘장애여성공감’의 회원이자 미국 시러큐스대 부교수로 여성·젠더학, 장애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은정의 책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은 이를 ‘접힌 시간성’(folded temporalities)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장애를 사라지게 하여 국가의 힘을 키우려는 목적을 위해, 시간이 접히고 축약되는 것이다.” 장애인의 몸에서 장애를 사라지게 하는 것, 곧 ‘치유’는 그저 좋은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를테면, 치유되지 않는 장애를 지닌 몸은 살 만한 가치가 없는 몸인가? 치유는 장애와 질병의 이력과 관련한 낙인까지 없앨 수 있는가? 치유 과정의 변형은 치유된 몸에 새로운 장애를 경험하게 하지 않는가? 201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국외 학계에서 주목받았던 이 책에서 지은이는 장애와 젠더, 탈식민의 관점에서 치유가 어떻게 장애·질병이 있는 몸의 현존을 부정하는 폭력이 되는지 깊숙하게 파고든다.

황우석의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을 기리기 위해 2005년 발행된 특별 우표.
황우석의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배양 성공을 기리기 위해 2005년 발행된 특별 우표.

지은이는 “타자를 소위 나아지게 해줄 것이라는 명목으로 타자가 지닌 차이를 지우려는 힘의 행사를 묘사하기 위해서 ‘치유 폭력’(curative violence)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치유는 시간을 접는 방식으로 ‘장애’ 범주에 속한 몸을 ‘정상’ 범주로 이동시킬 것을 약속한다. 이때 ‘장애화’된 몸은 과거와 현재, 타자성과 정상성, 치유 전과 후 사이의 중간 지대에 머무는데, 이 과정에서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정상성의 억압”을 폭력으로서 겪게 된다. 장애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치유를 통해 획득할 정상성은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등 범주 이동 자체가 결코 평등하게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비장애뿐 아니라 젠더, 이성애 중심의 가족, 탈식민화된 국가 등 치유가 전제로 삼는 정상성의 다양한 기준치들은 장애여성으로 하여금 더욱 복잡한 양태의 폭력을 겪게 만든다.

지은이는 식민 시기 이후 역사, 정책, 제도, 문화 등을 통해 이러한 치유 폭력의 다양한 작동 방식을 분석하는데, 문학 작품과 영화 등 문화적 재현물들은 역사적·정치적인 맥락 아래 주조된 장애·질병에 대한 복합적인 치유 서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컨대 주요섭의 단편소설 ‘추물’(1936)처럼 ‘장애의 유전’을 두려워하는 장애인이 아이를 낳지 않는 등 재생산을 통제함으로써 가족과 사회, 국가로부터 장애를 뿌리 뽑으려 하는 ‘유전 드라마’는 식민 조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장애를 낙태의 예외적 인정 사유로 규정했던 ‘모자보건법’(1973년 제정)은 이처럼 비장애, 이성애 결혼, 주권국가 등의 정상성을 앞세워 장애를 적대시해온 치유 폭력의 제도적 사례다.

<심청전>을 중심에 놓고 가족과 치유 사이의 관계와 ‘대리 치유’의 개념을 제시하고 분석하는 대목은 특히 탁월한 대목으로 꼽을 만하다. 장애화된 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치유와 같은 변화가 필요한 몸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비장애 가족 구성원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의무감”에 따라 치유 행위자의 역할을 떠맡는 ‘대리인’이 된다. 이처럼 “장애인과 가족 구성원의 신체는 하나로 묶여” 있다. 장애와 치유는 가족 공동체 전체가 이익과 희생을 따지는 영역이 되는데, 국가와 사회는 이를 방패막이 삼아 장애인의 삶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게다가 심청의 경우에서 보듯 이 영역은 여성이 가족을 지원하고 헌신하도록 구조적으로 젠더화되어 있다. “가족 구성원을 신체적·경제적 차원의 운명 공동체로 묶는 것은 지속가능한 돌봄이 아니라 장애를 치유하기 위한 노동이나 시설화로 이어진다.” 장애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폐지를 요구했던 ‘부양의무제’, 그리고 이 제도 때문에 살길이 막혀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만 수많은 장애인과 대리인의 죽음들이 그런 현실을 증언한다.

지난 4월21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휠체어에서 내려 바닥을 기며 시민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4월21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휠체어에서 내려 바닥을 기며 시민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보장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 밖에도 지은이는 장애여성을 ‘여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폭력과 장애여성의 취약성을 강조하는 보호 사이의 이분법, 식민주의와 전쟁, 국가 폭력의 트라우마를 장애로 재현하며 개인에 대한 젠더화된 일상적 폭력을 감추는 거래, 의료적 치료 뒤에도 남겨질 수밖에 없는 한센병 환자들의 낙인과 격리 경험 등 치유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폭력의 다층적인 실체들을 까발린다.

지은이는 “과연 우리는 장애가 있는 몸을 과거의 몸이나 앞으로 되어야 할 미래의 몸이 아닌 현재 상태 그 자체로 볼 수 있는가” 묻는다. 황우석이 치유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동안, “강원래는 아무 일도 안 하고 기다리거나 치료에 모든 것을 걸지 않고, 자기 삶을 살겠다고 밝히며, 치료를 바라는 수동적인 장애인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장애인들의 삶을 개선하는 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처럼 “시간을 펼치고 장애의 존재를 드러내는” 모습은 외면했을 뿐이다. 지은이의 작업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겪지 않고 장애를 가지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란 사실을 일깨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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