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처연한 슬픔을 안다고 그가 말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구름과 노을의 차이 같은 것이라고.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두고 걷다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각자 멀리 걷기 시작했다. 왜 바람은 그림자가 없는 것일까? 분명히 몸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질문은 겨울이 되기 십상이었다. 우리는 점점 서로를 모르는 척하고, 각자의 집으로 한발자국씩 더 들어가고, 집을 밖에다 내다 버리고, 또 집 밖으로 뛰쳐나오고, 집이 되어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안은 점점 밖이 되고.
-이설야 시집 <내 얼굴이 도착하지 않았다>(창비)에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