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의 개척자 전길남 이야기
구본권 지음 l 김영사 l 1만8800원 1982년 5월, 경북 구미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연구실에 모인 연구진 수십명이 눈이 빠지게 컴퓨터 화면만을 응시하다, ‘SNU’ 세 글자가 나타나자 환호성을 터뜨렸다. 250㎞ 떨어진 서울대 전산학과 컴퓨터에서 전송한 글자였다. 기종이 다른 세상의 모든 컴퓨터를 연결하는 ‘TCP/IP 통신 규약’을 활용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첨단 네트워크 구축에 성공한 날이었다. 통신기술 불모지 한국이 인터넷 강국으로 향하기 시작한 순간, 그 중심에 전길남(당시 전자기술연구소 컴퓨터연구실 책임연구원)이 있었다. <전길남, 연결의 탄생>은 미래 세대를 위해 자신의 기록을 남기고자 한 ‘한국 인터넷의 개척자’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와, 그의 인생을 알리는 것이 우리 시대에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한 정보기술(IT) 전문 저널리스트 구본권이 뜻을 같이해 펴낸 책이다. 구본권은 전길남을 50여 차례 인터뷰하고 가족과 동료·지인 등을 폭넓게 만나 한 사람의 삶을 성실히 기록했다. 1943년 재일교포 2세로 태어나고 자란 전길남은 미국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링 박사가 돼 1976년 미 항공우주국(NASA) 태양계 외곽 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알프스 마터호른 북벽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전길남은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문제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조사해 실낱같은 방법을 찾아 이에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런 그도 2003년 암벽등반 중 추락사고를 당하며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맞았다. “아무리 긴장하고, 노력해도 실수를 피할 수 없다.” 실수하면 안 되는 무대에서 공연하듯 늘 긴장하던 그에게, 마음의 여유가 찾아온 순간이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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